김종찬의 내가 만난 하나님(9)

입력 2010-07-27 12:52


시지프스의 바위를 밀어 올리며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을 괴롭히고, 피해를 입히며, 신세를 지면서 살아왔는지를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10년의 환란을 겪고 나서야 겨우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그런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제가 늘 남들에게 베풀고, 남들에게 조금은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는 사실입니다. 심각한 교만과 착각과 오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인생이었던 것이지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는 제가 저지른 몇 가지 잘못과 실수가 제게 환란을 불러왔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이런 환란 속에 놓여야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심지어 억울하다는 생각도 자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제 지나온 삶 전반에 대한 형벌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 삶은 안도현의 시에 나오는 ‘연탄재’만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가 설쳐댄 꼴이 실로 가증스럽습니다. 남에게 사소한 도움이라도 줄 때에는 큰 시혜라도 베푸는 양 으스대었고, 남을 위해 사소한 손해라도 감수할 때에는 큰 선심이라도 쓰는 양 생색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는 뻔뻔스레 관대한 놈이, 남에게는 뻣뻣하고 엄격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였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을 몰랐던 세월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고백합니다.

저는, 얄팍한 독서와 무식을 겨우 면한 수준의 지식에 기대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며 살아왔습니다. 한 줌의 조그마한 뇌와 당나귀에 비길 수 없이 작은 눈과 귀, 그리고 세치 혀로 세상을 농단한 죄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방송이나 글을 통하여 다중에게 끼쳤을 폐해에 생각이 미치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공공성, 비판정신, 선의, 정의, 진실, 애국심 등등의 화신인 양 퍼부은 말과 글이란 이름의 화살이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법정스님 같은 분도 세상에 말로 글로 남긴 빚이 너무도 많다고 뉘우치며 세상을 떠났는데, 저야 이루 말할 수 없는 형국 아니겠습니까. 젊은 날에 일찍이 철이 든 김민기가, “형, 이젠 마이크까지 잡았다 이거지?” 라고 한 그 말의 의미를, 그때 바로 알았어야 했는데, 저는 이렇게 쇠락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김민기처럼 진작부터 <지하철 1호선>을 탔어야 했는데, 고급 자가용을 탄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과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는 거의 일치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진정 제가 애국심에 충일했고, 정의감에 투철했으며, 유리처럼 투명한 비판의식과 진정한 진실의 수호자였다면, 이렇게 살아있어서는 안되죠. 영욕이 교차한 역사의 한가운데를 정면에서 다투며 뚫고나왔다면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했던 그 많은 말과 제가 썼던 그 많은 글들은 모두 허공을 떠도는 먼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겪은 10년의 환란도 제가 저지른 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벼워서 마치 새털과도 같은 형벌인 셈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제 숨이 멎고, 하나님 부르심 받는 그날까지 남은 생을 씻김굿 하듯이 살아 마땅합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 제가 드릴 수 있는 예배는 고작 그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땅히 죽었어야 할 몸인데, 이렇게 살리시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새로운 호흡으로 살게 하시나, 갚을 길이 고작 그것뿐이어서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절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인생을 90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3분의 2가 지났습니다. 그것도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남은 생만은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잠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끝내 잠드는 존재,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끝내 주님을 부인하고야 마는 존재인 줄을 아는 까닭에 숨이 찹니다. 하나님의 말씀마다 따르지 않아야 할 말씀이 없으나, 아직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어긋나기 일쑤여서 근심입니다. 기도가 삶이 되고, 삶이 곧 기도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까닭에 가슴을 치고 맙니다. 10년의 환란에 빠져 있으면서도 죄를 씻기는커녕 거듭 죄를 짓는 저 자신을 보며 애통해 합니다.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세월은 그러하거니와 죄인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사는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세상을 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향하여 살리라, 기도드리고 서원합니다만 그대로 지키지 못하는 저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어찌 이리 힘든지요. 믿음이 약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품에 안겨서도 세상의 삶으로 조바심하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셨음에도 하루하루의 삶에 안달복달하는 제 모양이라니요.

그러나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심 기뻐합니다. 이제는 제 부끄러운 모습을 하나님을 통해서 볼 수는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까막눈이어서 제 모습을 보지도 못하던 시절보다는 한결 아니 180도 달라졌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눈에 침을 발라주시어 제 눈을 뜨게 하여주심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저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의 표적이 제게서 매일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에만 솔깃하던, 마치 가는 귀 먹은 노인 같던 제 귀도 트였습니다. 당나귀 귀가, 구별하여 들을 줄 아는 귀로 치유된 것입니다. 이 역시 제게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이며 표적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제대로 따르지 못하므로 숨이 차고, 근심하고, 애통해 하지만 제가 매일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말씀이 조금이라도 더 제 삶에 배어들어서 살아있는 말씀을 증거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계속)

7월 26일 김종찬(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희망의 소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