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1년 통치자금 10억 달러… 美정부 ‘정밀한 동결’ 시작됐다

입력 2010-07-26 18:40


미국이 추가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의 해외 불법계좌 거래를 끊겠다고 선언하면서 달러를 둘러싼 북·미 간 ‘돈의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무기수출 대금을 포함해 마약거래, 가짜담배, 위조지폐 제작 등 불법행위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결국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밀 통치자금, 즉 비자금을 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명운을 걸고 방어에 나서는 북한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막오른 10억 달러 전쟁=역사 속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의 비밀 통치자금도 상당히 큰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김 위원장의 비자금 전체 규모는 약 40억∼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등 해외 은행에 은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위 탈북자의 증언이나 미 정부의 분석에 따른 것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많다.

미 정부가 추가 금융제재를 통해 1차적으로 주목하는 돈은 10억 달러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1년간 정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통치자금이 그 정도 규모이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6일 “김 위원장은 1년에 10억 달러 정도가 있어야 한다”며 “미국이 불법 행위를 통제하고, 한국과 일본 정부가 돈줄을 막으면 정권 유지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 의회조사국은 2005년 각 정부 기관의 자료를 종합 분석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마약 거래, 밀수, 위조지폐 등의 불법 행위로 연간 최대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과거 미사일 수출 포기 대가로 3년간 연간 10억 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금융기관의 협조를 얻어 10억 달러를 통제한다면 김 위원장 통치자금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김 위원장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노동당 39호실을 통해 통치자금을 집중 조성했다. 39호실장은 김 위원장의 고등학교 동창인 전일춘(69)이다.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은 39호실을 통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은밀하게 관리된다. 39호실 산하에는 무역회사 100여개를 비롯해 각종 해외지부, 은행 및 금광까지 있다.

무기수출 대금, 마약거래 등 불법행위로 인한 수익, 김 위원장을 향한 뇌물, 특산물 수출 및 상점 운영, 남북교역 등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 등 불법, 합법 자금이 모두 39호실로 모인다.

금광은 김 위원장의 요긴한 수입원으로 벤츠 승용차 등 사치품을 구입할 때 현금 대신 금괴로 결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중동에 수출해 온 스커드 미사일의 대당 가격은 200만∼250만 달러, 노동 1호는 700만 달러 수준이다. 북한이 무기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2005년까지만 해도 5억 달러 수준이었으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제재로 최근에는 대폭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형성된 비자금은 주로 김 위원장 가족의 호화생활과 당·군 핵심 측근의 충성심 유지, 대남 공작활동 등에 쓰인다.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 등에도 사용된다. 북한은 2008년만 해도 고급 양주와 승용차 등 1억 달러가 넘는 사치품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밀 통치자금 드러날까=미국은 이번 금융제재를 통해 불법 외화벌이를 막는 한편, 전 세계 은행에 수십년간 숨겼던 김 위원장의 비자금도 찾아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해외계좌가 다수 개설된 중국은행들의 협조와 확실한 돈세탁 증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불법적으로 형성된 비자금이나 통치자금을 정상적인 무역활동 자금과 구분하기 쉽지 않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제재 당시 미국은 BDA를 통한 북한의 돈세탁이 의심된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며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사이 북한은 비자금을 세탁하고, 현금화하면서 제재를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북한 지도층에 심리적 압박을 줄 수는 있어도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