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개성공단, 그 절묘한 존재

입력 2010-07-26 17:50


“5·24 조치는 별 실효성 없이 개성공단 입주기업만 골탕 먹이는 것 아닌지”

참 신기하다. 지금과 같은 극도의 남북 긴장국면에서도 개성공단의 공장은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한반도 주변이 신(新)냉전체제로 접어들면서 해상 무력시위가 펼쳐지고, 한·미-북·중이 전례 없는 신경전을 펼치는 와중에서도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모두 말을 아끼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안함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개성공단 지속이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었다. 일부에서는 공단 폐쇄 후 입주기업에 대한 보상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든 남북교류사업이 중단됐는데도 개성공단만큼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공단을 폐쇄할 경우 받게 될 피해가 남북 모두에게 부담스런 수준이기 때문일 것 같다. 우선 북한으로서는 단돈 1달러가 아쉬운 판에 이만한 외화벌이가 없다. 북한은 천안함 사태 이후 중대 조치 운운하면서도 개성공단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리고 있다고 한다. 올 1월 4만2000명 수준이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4만4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서울 불바다” 등 극단 용어까지 써가며 협박을 하면서도 공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역시 돈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연간 5000만 달러(약 600억원)를 벌어들이는데, 북한 경제규모로 볼 때는 매우 큰돈이다. 이를 어찌 포기하겠는가.

우리나라로서는 사실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생산은 무시해도 괜찮은 수준이다. 그보다는 개성공단의 존재로 얻는 한반도 리스크 완화가 더 큰 이득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국제신용평가사 S&P의 데이비드 비어스 전무는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 관련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까지 없었다면 국가신용등급은 추락하고,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심각한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개성공단이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또한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우군(友軍)화하는 장점이 있다. 약품내성이 없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건네주는 마이신 한 알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하고, 초코파이 간식을 먹고 6개월이 지난 근로자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습득할 것이다. 근로자는 4만여명이지만 가족과 친지, 이웃 등을 합치면 수십만명을 개안(開眼)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단 규모가 커질수록 그 인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 정부가 취한 ‘5·24 조치’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상주 체류 인원이 1000여명에서 500여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드는 바람에 관리감독 소홀, 납기 차질, 품질 저하 등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500명가량은 서울에서 출퇴근해야 하는데 출입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은 6시간에 불과하고, 지방에 본사가 있는 직원은 여관이나 찜질방 신세를 져야 한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게다가 설비 반출입 제한까지 더해져 공장 가동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는 모양이다.

정부는 우리 직원들의 신변안전, 즉 억류 가능성을 고려해 체류인원을 줄였다고 한다. 만약의 경우 억류인원을 1000명에서 500명으로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납득이 잘 안 된다. 북한이 많은 인원을 억류하려면 낮에 하면 그만 아닌가. 천안함 사태 이후 뭔가 조치를 취해야 될 것 같아 그런 모양이지만 실효성도 없이 우리 기업만 골탕 먹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개성공단에 대해 보다 명확한 스탠스를 취했으면 좋겠다. 일부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대로 북한의 돈줄을 끊으려면 아예 공단을 폐쇄하든지, 아니면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해 기업들이 생산활동에 충실하도록 최대한 지원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모습은 왠지 ‘실용정부’답지 못한 것 같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