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청백리 왕젠쉬안 감찰원장을 만나다

입력 2010-07-25 17:44


[미션라이프]부드러웠다. 하지만 온화한 미소 속에서 촌철살인의 말들이 쏟아졌다.

“기독정치인이라면 무엇이 진정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지, 혹시 우리의 행동이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건 아닌지 반드시 따져봐야 합니다. 만일 이 두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대만의 청백리, ‘걸어 다니는 도덕교과서’로 불리는 왕젠쉬안(王建煊·72) 감찰원장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감사원장 격인 그는 지난 22일 열린 제42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외국 귀빈 가운데 최고위층에 속한다. 5권 분립(행정, 입법, 사법, 고시, 감찰)국가인 대만의 최고지도자 중 한명으로 독실한 기독인이다.

왕 원장은 정치는 모든 것의 근본이기에 정치인은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면 훌륭한 정치인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정치인 덕목으로 마키아벨리식 권모술수가 아닌 사랑을 최우선적으로 꼽았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길을 찾아나서야 하는 게 정치라는 점에서 사랑이란 실천적 지혜가 절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사랑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제일 좋은 것을 국민에게 주려는 마음이죠. 사랑이 충만해지면 진정한 책임감이 생깁니다.”

왕 원장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 성결한 삶을 강조하면서 요한1서 3장18~19절을 인용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번에 함께 방한한 부인 수파자오(蘇法昭·72)는 왕 원장의 멘토이자 친구나 마찬가지다. ‘일심동체 부창부수(一心同體, 夫唱婦隨)’라 할 수 있다. 대만 명문 국립 청궁(成功)대학교 동기동창인 그녀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게 됐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교회 출석을 조건으로 한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가 있었기에 왕 원장이 ‘왕성인(王聖人)’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 전문대인 타이베이상업기술학원 교수를 역임한 수파자오는 여느 부인네들과는 달리 값비싼 장신구는 물론 화려한 옷가지를 갖고 있지 않다. 4벌의 ‘치파오(旗袍,중국여성이 입는 원피스 모양의 의복)’가 최고위층 모임에서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옷이다. 그런 모습이 대만 정계에서 전혀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이들 부부의 청렴한 삶이 널리 각인됐기 때문이다.

“저를 ‘왕성인’이라고 하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의인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聖’과 ‘剩’, 중국어 발음이 같아요. 저는 ‘剩下’, 즉 남겨진 사람이에요. 하나님 은혜가 우리의 참된 재산이죠. 뭐 다른 게 필요하나요.”

그 또한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해 묻자 “기도가 난관을 이겨낸 비결”이라고 답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기도는 기독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축복입니다. 주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어요.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극복하면 됩니다.”

정치적 부침도 적지 않았다. 그는 집권 국민당의 소장파 그룹의 리더로서 1990년 재정부장(장관)에 임명돼 불법과의 전쟁을 선포, ‘직사포’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92년 외압으로 물러나야 했다. 93년에는 국민당의 ‘검은돈 정치문화’에 항거해 탈당, 소시민을 대변하는 ‘신국민당(新國民黨, 약칭 新黨)’을 창당하고 당 대표를 맡았다. 신당 후보로 타이베이시장 선거(98년), 타이베이현장 선거(2001년)에 뛰어들었지만 연이어 낙선, 정계를 은퇴했다. 2년 전 마잉지우(馬英九) 대만 총통의 간곡한 요청으로 감찰원장직을 수락했지만 처음엔 고사했었다. 그는 부부가 받은 퇴직금 모두를 종잣돈으로 해 재단법인 ‘애심제2춘문교기금회(愛心第二春文敎基金會)’를 설립, 중국대륙에서 자선 및 교육 사업에 헌신하는 등 제2의 인생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떠나온 조국인 중국 땅에 미래를 책임질 각종 학교들을 세워 후학을 양성해왔다. 중국 전역에 설립한 희망초등학교만 200곳을 넘어섰다. 저장(浙江)성 핑후(平湖)시에서는 ‘신화애심(新華愛心)고등학교’를 세웠다.

“하나님은 저희에게 친자식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대신 6만여 중국 아이들을 주셨어요. 저희 기금회에서 돌보는 중국 내 아이들이 이처럼 많아요. 고등학생에게는 졸업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합니다. 물론 재정적으로 쉽지 않는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대만은 물론 미국 등에 후원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의 영향력을 발휘할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왕 원장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 간 뒤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명예와 권세 등 이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영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크리스천들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성경말씀에 부합된 행동인가. 반드시 생각한 뒤 몸을 움직이세요. 그리고 더욱 더 선교에 힘써서 전 세계를 복음화 하는 데 앞장서주세요. 당신들의 향기가 세계 곳곳에서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왕젠쉬안 감찰원장은 1938년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출생. 대만 청궁대 회계통계학과, 대만 정치대 재정연구소 석사, 미국 하버드대 국제조세계획 연구. 재정부 조세처장(80년), 경제부 상무차장(84년), 국민당 제13차 중앙위원(88년), 경제부 정무차장(89~90년). 재정부장(장관, 90~92년). 신당 대표. 재단법인 ‘애심제2춘문교기금회(愛心第二春文敎基金會)’ 설립자. 저서 ‘조세법’ ‘즐겁게 살아갑시다’ 등. 현재 감찰원장, 신화애심기금회(新華愛心基金會) 이사장.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