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터진 환매 11일 거래일 동안 1조5000억 썰물… 울고 싶은 ‘펀드’ 춤추는 ‘랩’

입력 2010-07-25 18:22


2008년 여윳돈 1100만원을 국내 주식형펀드(거치식)에 넣은 회사원 권모(33)씨는 요즘 펀드 때문에 고민이다. 지난 23일 코스피지수가 장중에 연고점을 찍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더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니 답답하고, 환매하자니 미련이 남아서다. 결국 원금 1100만원 가운데 600만원을 환매하기로 결심했다.

권씨처럼 2007∼2008년 국내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가 줄을 잇고 있다. 펀드 대량 환매 행렬은 올 들어 1월, 4월, 지난달에 이어 네 번째. 올해 국내 주식형펀드를 떠난 자금은 7조370억원에 이른다. 해외 주식형펀드까지 합하면 12조원이 넘는다.

이 많은 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금융투자업계는 랩어카운트(Wrap Account·고객맞춤형 자산관리계좌)에 주목하고 있다. 주식형펀드가 잇단 환매에 시달리는 동안 랩어카운트는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눈물 머금고 나가는 개미=25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22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11거래일 연속 자금이 유출됐다. 총 1조5951억원이 빠져나가 유출 규모가 지난 6월(14거래일 연속 3조9768억원) 이후 두 번째로 많다.

코스피가 1758.01을 찍었던 14일과 15일 이틀 동안만 1조25억원이 나갔다. 1700선을 오르내리던 증시가 ‘반짝’ 상승하자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펀드를 대거 팔아치운 것. 이후 증시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서 펀드 환매 유출액은 일평균 26억∼1000억원대로 줄어든 상태다.

그러나 국내 펀드 환매 행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2∼3년 전 코스피 1700∼1800선에서 유입된 자금 가운데 1800선 이상에서 들어온 자금이 펀드 환매 대기 물량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앞으로 빠져나갈 자금 규모를 놓고 10조∼2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영증권 오광영 애널리스트는 “지수가 오르는데 환매가 줄을 잇는 것은 ‘본전’을 찾으려는 투자자들의 심리로 여겨진다”면서 “다만 경기회복 기대로 환매 기준 지수가 지난해 1600선에서 올 들어 1700선으로 점차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펀드에서 랩으로=금융투자업계는 2007년에 불었던 ‘펀드 열풍’이 고스란히 랩어카운트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철중 연구원은 “지난 3∼6월 국내 주식형펀드(ETF 제외)에서 6조5000억원이 유출됐는데, 같은 기간 국내 11개 증권사의 랩에 2조2000억원이 유입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주식형펀드에서 유출된 돈의 34% 정도는 랩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랩 성장세는 눈부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13조3162억원에 불과하던 랩 자산은 지난 3월 말 21조9276억원까지 급등했다. 지난달 말 현재 랩 자산은 28조5159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통상 50∼60개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주식형펀드보다는 랩은 소수종목에 집중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 위험이 주식형펀드보다 높다”고 말했다.

이밖에 안전 자산인 채권형펀드와 단기자금 대기처인 머니마켓펀드(MMF)로도 돈이 흘러갔다. 올 들어 순유입액이 각각 4조3220억원, 6조7510억원 늘었다.

김 연구원은 “펀드 환매 규모가 작지는 않지만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나간 돈이 증시 주변을 맴돌고 있고, 무엇보다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