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철 (1) 교수 퇴임 10년 목사 은퇴 5년만에 복귀

입력 2010-07-25 17:27


지난해 7월 말, 루터대학교 이사들과 만났다. 학교를 건축하고, 증원 및 증과를 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3대 총장이 사표를 냈으니 학교를 맡아주세요.” “루터대 총장직을요?”

당혹스러웠다.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노년을 즐기고 있는데, 다시 그런 중책을 맡는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런 나를 향해 “그리 생각 말고, 숙명으로 받아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숙명이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소명으로 받아 달라는 외침이었다. 목회생활 46년, 20년간 루터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으로 4년을 보냈다. “숙명으로 받아 달라”는 음성이 계속 맴돌았다. ‘더 이상 내가 회피할 길이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결단을 내렸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11월 27일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나는 제4대 총장에 선임됐다. 2010년 2월 16일부터 학교에 나가 근무를 시작했고, 3월 2일 루터대 총장에 취임했다. 75세 나이에 루터대로 복귀한 것이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이 말씀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지난날 젊은 목회자들에게 이 말씀을 늘 강조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하라.” 그런데 나는 총장직이 힘들고 부담된다고 사양하려고 했다. 그랬다면 지금껏 내가 강조한 말들은 모두 위선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결정은 쉽게 내려졌다.

교수로 정년퇴임한 지 10년이 됐고, 목사로 은퇴한 지 5년이 지났다. 총장이 되고서 4개월, 정말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한 학기를 마무리한 시점에서 “주님의 은혜구나”라는 말밖에….

나는 총장에 취임하며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먼저 학생들이 자긍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이를 위해 일부러 학생들과 접촉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때론 총장실로 불러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도 불렀다. 학교 앞에 있는 우리 집에 격의 없이 놀러 오도록 했다. 처음엔 어려워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할아버지를 만나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큰 대학이 있는가 하면, 루터대처럼 작은 곳도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보면, 이 제목이 얼마나 유명한 명제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붙이려고 한다. ‘작은 것이 강하다(Small is strong)’. 루터대는 규모 면에선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이고 강하다는 걸 보여줄 것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산책 중에 한 남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루터대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어?”라고 물으니, “두 달 전만 해도 학교에 대해 잘 몰라 후회했다”고 답했다. “지금은 어떠한가?”라고 다시 묻자, “교수님들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화답했다. 바로 이것이다. 학생들이 많다보면 사랑을 나누는 게 쉽지 않다. 적은 수이기에 더 관심을 갖고 더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루터대로 복귀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약력 1935년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리 출생, 한국신학대(한신대) 연세대연합신대원 루터교신학원 졸업, 팔복교회 명예목사, 루터대학교 총장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