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관람객 사이 ‘벽’은 없었다
입력 2010-07-25 15:08
세계 미술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의 유명 미술관에는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명화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선 유리 피라미드로 잘 알려진 루브르미술관. 무더위가 본격 시작되고 바캉스 시즌까지 겹친 지난 주말에도 몰려든 인파로 길게 줄을 서야 했다. 1793년 궁궐에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루브르는 리셜리외, 슐리, 드농 등 3개관으로 이뤄졌다.
리셜리외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란·이슬람 미술, 중세·르네상스·19세기 장식미술, 14∼17세기 프랑스 회화 등이 소장돼 있고, 슐리관에는 로마 고미술과 도자기, 17∼18세기·20세기 장식미술, 17∼19세기 프랑스 회화 등이 전시돼 있다. 드농관에는 그리스·에트루리아 고미술, 19세기 프랑스 회화, 이탈리아·스페인 회화 등이 자리잡고 있다.
3개의 전시관 코스는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어느 관으로 출발하더라도 쉽게 통로를 찾을 수 있는 동선으로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했다. 회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무래도 리셜리외관을 먼저 보는 게 순서다.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등 조각작품을 거쳐 만나게 되는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들’에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작품들을 일일이 소개하기란 역부족이지만 가로 10m의 화면이 관람객을 압도하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빼놓을 수 없다.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여자’ 등 숱한 명화를 지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면 작품 주변에 발디딜 틈 없이 들어선 사람 구경부터 먼저 해야 한다.
작품과 관람객 사이 통제선이 너무 멀어 모나리자의 미소를 자세히 보기는 어렵다. 사진 촬영은 기본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웬만큼 뭐라 하지는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드는 관람객을 위한 루브르의 배려이자 더 많은 인파를 유도하기 위한 상술이기도 하다. 자율 관람을 최대한 허용하되 작품 보존을 위해서는 또 그만큼 투자를 하는 시스템이다.
중세기 궁궐의 공간을 충분히 살리면서 명작들을 배치한 전시관은 문화재와 미술의 품격 있고 조화로운 어울림을 잘 보여주었다. 옛 기무사 자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종친부 건물의 복원을 두고 문화재 분야와 미술계 인사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의 안목과 지혜를 루브르미술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센 강변의 오르세미술관에도 관람객이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1900년 세워진 기차 역을 1986년 미술관으로 개조한 오르세는 중앙홀 벽 가운데 걸려 있는 대형 시계가 역사(驛舍)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1925년 건립된 후 85년 만에 전시장과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 중인 옛 서울역사를 오르세미술관은 떠올리게 한다.
빛과 역동성으로 상징되는 19세기 인상파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오르세는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위의 식사’,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렛의 춤’, 드가의 ‘욕조’, 앵그르의 ‘샘’,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등 명화들을 선보인다. 오르세는 하루 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명화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오르세 역시 관람객 편의를 고려한 전시를 구성했다. 미술관 1층과 2층을 작가별, 사조별,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작품을 배치했다. 하지만 미술관 전체가 보수공사 중이어서인지 조명이 밝지 않고 전시관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 조각작품까지 사진촬영을 엄격하게 통제해 루브르와는 대조를 보였다.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회화 중심의 미술관 투어를 했다면 로댕미술관에서는 로댕 조각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정원 곳곳에 세워져 있는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들’ ‘지옥의 문’ 등 걸작들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전시관에 설치된 ‘키스’ ‘신의 손’과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클로델의 작품도 볼만하다.
로댕미술관은 로댕의 조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로댕이 손수 그렸던 회화와 드로잉 등을 통해 모든 장르에 능통했던 천재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현재 로댕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표작과 드로잉이 다수 출품되기는 했으나 로댕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기에는 무척 아쉬운 블록버스터 전시라는 생각이 로댕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들었다.
파리=글 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