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에 다시 기도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입력 2010-07-25 16:08


[미션라이프]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이어진 24일 오후. 조기연(44·우리가꿈꾸는교회)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삼각산(북한산)에 올랐다. 한참을 걷던 조 목사는 산 중턱 바위에 자리를 폈다. 바위에 오르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기자도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찬송 한 장을 부르는 순간 땀이 비오듯 흘려 내렸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먼저 기도를 드렸다. 이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민족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도 이어졌다. 교회마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전도의 열정이 충만한 교회가 되길 기원했다.

“주여”를 몇 번 외쳤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통성 기도를 한참이나 계속했다.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기도가 개구리 울음 소리처럼 들렸다. 무더움을 이기는 기도, 감사와 소망이 가득 담긴 기도가 잔잔한 메아리가 돼 길게 울려 퍼졌다.

삼각산은 수십 년 전부터 한국교회 ‘눈물의 동산’ ‘기적의 동산’ ‘능력의 봉우리’로 불린 곳이다. 수많은 성도들이 이곳을 찾아 하나님과 대화했다. 금요일 밤이면 산 속 곳곳에 만들어진 130여개의 기도터와 제단에 기도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곳에 세워진 밀알기도원, 감람산기도원, 제일기도원 등은 연일 계속되는 집회로 발들여 놓을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교회 부흥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개인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놓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김익두 길선주 한상동 강달희 신현균 조용기 이만신 김홍도 피종진 이태희 목사 등 수많은 목회자들도 산기도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들은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며 끈질기게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의 성전(聖戰)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국가는 위기를 극복했으며 한국교회는 전무후무한 대부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무장간첩이 침투했을 때나 일촉즉발의 남북간 무력충돌의 위기도 ‘삼각산의 기도’로 막아냈다. 특히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준 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각산의 기도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언젠가부터 삼각산은 침묵의 산골짜기로 변했다. 90년대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등산로를 제외한 출입이 통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부는 삼각산을 자연휴식년제와 특별보호구역으로 만들어 2000년 1월1일부터 지금까지 기도자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결과적으로 기도의 발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훼손된 자연에 휴식을 주고 환경을 회복하겠다는 취지에서 정부는 삼각산을 통제하고 있다. 기도회장으로 이용될 만한 곳에는 아예 줄을 쳐 놓아 출입을 막았다. 심지어 보호감시반을 두어 규정을 어기고 기도하는 사례를 적발하여 과태료를 물릴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여기에다 산중턱을 넘어선 고급 주택가의 확장으로 안면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졌다. 삼각산은 2011년까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1주일에 한번 이상 산기도를 드린다는 고인규(65) 권사는 “삼각산 깊은 데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아쉽다”며 “삼각산 기도 열기가 회복돼 한국교회 재부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 벧엘금식기도원 김태순(71) 원장은 “삼각산은 한국교회 기도의 영산(靈山)”이라며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때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부짖는 성도들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목회자들은 새벽 기도와 함께 세계 교회와 공유할 수 있는 기도 코드로 ‘산기도’를 꼽고 있다. 주로 기도원 등지에서 금식기도와 함께 이뤄지는 산기도는 한국교회의 특징이다. 안락하고 편안한 교회 의자보다는 척박한 곳에서 하나님과 일대일 대화에 집중하려는 불퇴전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은밀한 골방과 토굴, 암혈에서, 그리고 수도 서울의 삼각산 바위에서….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삼각산의 기도 소리가 차츰 늘고 있다. 산기도의 영성은 회복될 것인가? 나라와 민족, 교회의 위기를 알려주는 삼각산, 한국교회의 침묵을 깨워야 할 때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