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김하늘, 당당해서 행복한 여배우

입력 2010-07-25 18:08


MBC 수·목드라마 ‘로드넘버원’에서 열연하고 있는 김하늘(32)은 13년 전 영화 ‘바이 준’에서 성년을 앞둔 흔들리는 고3 학생 ‘채영’을 리얼하게 연기하며 혜성같이 데뷔했다. 평범했던 여고생은 호기심 때문에 연예계에 입문 한 후 “기 센 사람들 속에서 많이 울고 엄청 흔들렸다”고 했다. 그렇게 견딘 13년, 20여개 작품이 필모그래피에 오르는 동안 그는 단단하게 변했다. 남들의 평가보다 자신의 선택을 믿는 ‘맷집’은 연예계에 난무하는 혹평을 담담히 넘기게 만들었다.

“물론 제가 생각한 의도와 달리 시청률이 저조해서 아쉬운 게 있지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시청률을 떠나서 제가 드라마에 임한 자세나, 감독님과 배우들과 얘기하면서 보여준 호흡이 중요해요. 드라마 찍으면서 수연이로 산 인생이 남달라요.”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하늘은 ‘로드 넘버원’의 저조한 시청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을 그린 ‘로드넘버원’은 소지섭, 윤계상 등 초호화 캐스팅과 1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돼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전쟁 장면이 어설프고 줄거리가 늘어진다는 지적 속에 한자릿 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90일, 사랑할 시간’(2007) ‘온에어’(2008) 등 로맨틱 드라마에서 활약한 그가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적은 전쟁 드라마에 뛰어든 것도 의외였다.

“어릴 때야 화면에 많이 나오는 게 좋았어요. 그냥 단순하게, 제 분량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연기할 때 분량 생각하고 들어가지 않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김수연의 캐릭터가 너무 탐났고요, 이거 놓치면 앞으로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았어요.”

수연은 집안의 머슴 출신이지만 강직한 군인이 되는 이장우(소지섭 분)와 애절한 사랑을 나누고,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 신태호(윤계상)로부터는 끈질긴 구애를 받는다. 전쟁 통에 장우와 헤어진 수연은 뱃속에 장우의 아이가 있음을 알고 그를 기다린다.

그런 수연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묻자 김하늘은 “불쌍하다니요, 안타깝지요”라고 말을 바로 고친다.

“사람들은 수연이 청승맞다고 해요. 하지만 수연은 당당하고 강한 여성이에요. 오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평양까지 따라가잖아요. 그곳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장우를 기다리잖아요. 이렇게 강한 여성이 어디 있나요.”

고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로 적었다는 그는 수연과 같은 자존감이 강한 여성을 연기하게 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기 때문에 들어오는 맞선 자리를 거절한다는 김하늘은 수연의 사랑 방식을 부러워했다.

“수연과 장우가 보여주는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싶어요.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위하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이어서 어떤 역경이 와도 평생 인연을 끊지 못하는 관계요. 너무 좋잖아요.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한다면 의당 그래야하지 않을까요?”

‘로드넘버원’이 100% 사전 제작된 덕분에 그는 요즘 차기작을 물색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로드넘버원 이후 사람들로부터 ‘더 당당하고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런 칭찬을 듣다가 어제 잠자리에서 문득 ‘내가 진짜 행복한가, 열심히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껏 힘들 때마다 버겁다고 놓아버리면 다 잃으니까 꼭 붙잡고 왔거든요. 그래서 또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질문은 또 같아요. ‘가느냐 마느냐’지요.”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가야지요.”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