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커션 외길 정건영… ‘학연’은 없지만 실력 하나로 두드리니 열리더라
입력 2010-07-25 17:27
그에겐 ‘연(緣)’이 없다. 최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반트너의 ‘퍼커션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국내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멀티 퍼커셔니스트 정건영(35) 교수에 대한 얘기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동양인 최초요, 최연소 타악기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학연’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는 해마다 방학 때면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준비된 자세로 임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골(충남 예산)의 고등학교 관악부 출신이다. 모태신앙인 정 교수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두드리는 악기, 퍼커션(마림바 비브라폰 실로폰 등 타악기)을 연주했다. 그가 처음 가진 악기도 마림바였다.
“학교 졸업 후 서울시립교향악단 타악기 수석을 역임한 김정현 선생님으로부터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린츠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시험을 안 본 건 아니다. 한 차례 떨어졌고, 지방대를 다니다 그만뒀다. 군대를 갔다 와 그는 생각했다. “퍼커션 연주를 활발하게 하는 유럽에서 공부하자.”
27세의 뒤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사실 실력 면에서 그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벽을 만났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퇴짜를 놓는 겁니다. 입학 제한이 27세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지요.”
더 이상 오스트리아에 남고 싶지 않았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수도 비엔나라도 구경하자며 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한인교회를 갔는데, 유학 온 한국 학생들로 북적이더군요. 사모님이 유학생들을 돌봐주고 계셨어요. 그분이 제게 빈국립음대가 입시철이니 한번 시험을 보라고 권했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시험을 쳤습니다.”
18명 중 혼자 합격했다. 비로소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고단한 유학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동양인이라고 차별도 심하게 받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더 노력했고, 학사·석사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쳤다. 2004년엔 연주 실력이 가장 빠른 드러머를 뽑는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클래식을 넘어선 그의 화려한 연주 실력이 유투브에 소개되기도 했다.
인종차별을 겪으며 오히려 한국인으로서 더 강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정 교수는 ‘동해 타악기 앙상블’을 준비 중이다. 독도는 우리 땅임을 전하고, 나아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다. 낮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퍼커션 선율을 들려주고, 퍼커션 대중화에도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달 19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20일 인천종합문예회관, 28·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각각 협연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