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빈자리’가 허전할땐 장흥 갯나들로 가자

입력 2010-07-23 17:57


2주기 맞는 7월 31일 ‘이청준문학자리’ 개원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을 기리는 ‘이청준문학자리’가 그의 묘역 앞 전남 장흥군 진목면 갯나들에서 31일 개원한다. 2주기를 맞는 날이다. 지난해 7월 발족한 이청준추모사업회(회장 김병익)가 기획하고 조성한 이 자리는 보령산 검은 오석으로 만든 ‘글기둥’과 너럭바위를 형상화한 ‘미백 바위’, 이청준이 생전에 그린 장흥문학지도가 새겨진 ‘바닥’으로 이루어졌다. 구조물은 조각가 신옥주 박정환 부부가 맡아 제작했다. 검은 오석으로 세워진 글기둥의 네 개면은 이청준의 서명과 초상 소묘, 그가 유서처럼 남긴 아름다운 단편 ‘해변 아리랑’의 한 구절이 새겨졌다.

“그는 생전에 늘 여기 와 앉아서 그의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이청준 ‘해변 아리랑’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노래장이 이해조다. 앞 문장을 좀더 읽어보자. “미구에 사라져 잊혀져 갈 비문-그러니까 그 죽은 사내의 아내와 친지들이 그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고 나서 바람 잦은 밭 언덕에 세워 남기고 간 비목, 사내 자신이 자신의 비목이 되어 자신의 묘지를 내려다보듯 하고 있는, 그 비의 뒷글은 이러했다.-노래장이 이해조.”

그러니까 이청준은 노래장이 이해조가 되어 비문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해변 아리랑’이란 제목에서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떠올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는 이청준의 ‘해변 아리랑’ 종장부와 겹친다.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 소재로 삼은 바닷가라는 구체성의 장소가 그렇거니와, 바다를 바라보는 방식(삶과 죽음을 말하는 방식)에서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청준의 소설 말미에 쓰인 ‘돛배’가 화폭에 그려진 무념무상을 그리고 있다면, 발레리의 ‘돛배’는 바다를 넘실거리며 나아가고 있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엮어내는 인간 삶에 대한 풍부한 울림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보편성을 부여한다.

오는 31일 오후 3시부터 장흥에서 진행될 개원식에는 이청준추모사업회 발기인들을 비롯해 문화계 인사와 독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2주기 추모식을 겸한 이 자리에서는 황지우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추모공연도 이어진다. 이날 행사에는 개원식에 맞춰 발간하는 ‘이청준 전집’ 1차분 도서 ‘병신과 머저리’와 ‘매잡이’의 봉정식도 진행될 예정이다.

김병익 회장은 미리 배포한 인사말에서 “네모 반듯한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청준문학자리’는 ‘서편제’ ‘눈길’을 비롯한 자신의 많은 작품이 태어난 태생지들을 손수 그린 지도에 표시해 줌으로써 고향의 자연 속에서 잉태한 그의 창작의 연원을 선명하게 지시해 주고 있으며, 14t의 거대한 오석 원석에 그의 호 ‘미백’의 낙관을 새긴 ‘미백바위’는 이청준 문학의 엄청난 힘과 그것을 응집한 그의 완강한 정서적 지층을 드러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