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의 사랑, 시대를 구원하다… 김별아 신작 장편 ‘가미가제 독고다이’
입력 2010-07-23 17:57
“무엇을 입었든 현옥은 틀림없이 내가 선물한 흰 고무신을 신었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너절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지르밟고 나아가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그 지옥으로부터 살아 돌아와야 했다”(‘가미가제 독고다이’ 중에서)
‘미실’의 작가 김별아(41·사진)의 신작 장편 ‘가미가제 독고다이’(해냄)는 사랑과 운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희극적이고 빠르게 전개된다. 21일 서울 서교동 해냄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별아는 “이제까지는 소설에서 묘사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를 중시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태평양 전쟁에 강제징집돼 가미가제 특공대가 된 조선인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만 봐서는 구구절절하고 어두운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문체도 분위기도 발랄하다. 방탕한 모던보이 ‘윤식’은 ‘현옥’을 만나 성장통과도 같은 사랑을 느끼지만 현옥은 형 ‘경식’과 인연이 있는 여자다. 형제는 같은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여러 차례의 우연 끝에 생사가 엇갈릴 선택을 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시대를 쓰고 싶었어요. 지금의 시대에 대해서도 나중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요. 시대의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윤식의 아버지 ‘훕시’가 백정의 아들에서 친일파 기업인으로 변신하는 과정, 신여성이었던 그의 아내 ‘정선’이 허울뿐인 현모양처로 변해버린 이야기도 일제강점기 사회상과 함께 그려진다. 당시 ‘모던’은 생동감 넘치고 활발했으나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기만과 거짓이 필요했다.
훕시와 정선이 1920∼30년대 문화통치 시대를 살았다면 윤식과 경식은 일제의 가장 엄혹한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인물들이다.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은 그들의 캐릭터가 변모해가는 과정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작가의 숨바꼭질은 이어진다.
김별아는 화랑세기에 갇혀 있던 여걸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장편 ‘미실’, 단종비 송씨의 애잔한 사랑을 그린 장편 ‘영영이별 영이별’ 등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자취에 천착해 왔다. 그는 이번에도 역사공간을 택했지만 인물은 허구로 설정했다. “역사소설을 쓰며 실존인물들을 다루다보니 결말 등 이야기의 폭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가는 다음에는 조선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 볼 생각이다. 하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지거나 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옛사람들에게 숨결을 불어넣고 생명을 덧입히는 그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