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장애1급 박모씨 팍팍한 삶 “지원금으론 집세 내기도 벅차”
입력 2010-07-22 21:46
#1. 황인준(34·지체장애 1급)씨는 서울 도선동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15개월째 살고 있다. 장애인들이 자립을 준비하는 동안 머물 수 있도록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마련해준 주거시설이다. 규모(36㎡)는 작은 오피스텔이지만 문턱이 없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동선도 잘 짜여 있는데다 주거비도 따로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간 머물 순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여기에서 빨리 나가야 다른 장애인들이 들어와 자립을 준비할 수 있거든요.” 자립홈을 떠날 경우 겪게 될 어려움이 많다. 그중에서도 주거비 부담이 가장 큰 걱정이다. “장애인들은 주택만 마련하면 그나마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지만 장애인용 주택을 얻기가 매우 힘들어요. 휠체어가 들어가려면 집을 개조하거나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사비(私費)가 적지 않게 들거든요.”
#2. 서울 신대방동에서 어머니(50)와 함께 사는 박모(27·뇌성마비·지체장애 1급)씨는 몸 상태만큼이나 하루하루 살기가 힘겹다. 8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59.5㎡)에 살면서 매달 10만5000원씩 대출이자를 내는데, 정부 지원금은 40만원 안팎. 박씨 어머니가 식당보조 등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있지만 식료품비와 교통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게다가 박씨가 거주하는 집은 장애인 거주용이 아닌 일반 주택 구조다. 박씨 같은 지체장애인으로선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황씨나 박씨 같은 장애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과 주거비에 대한 부담은 정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토해양부가 전국에 거주하는 장애인 가구 1만178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9년도 장애인 주거실태 조사’에선 ‘대출금 상환이나 임차료 부담 때문에 생필품 소비를 줄여야 할 정도’라고 응답한 비율이 21.3%로 일반 가구(7.4%)의 3배에 달했다.
장애인 가구가 지출하는 월 평균 주거비는 19만원이다. 일반 가구의 21만원보다 적지만 세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1%로 일반 가구의 8.9%보다 높다. 상가나 학원, 공장 같은 비주거용 건물과 비닐하우스, 판잣집 등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장애인도 각각 1.5%, 1.1%나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 가구가 정부에 바라는 지원책은 주거비 보조(38.5%)가 가장 많았다. 주택구입자금 융자 지원(14.9%)이 뒤를 이었다. 마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동희 소장은 “전·월세로 거주하는 장애인 가구들의 경우 대부분 신용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주택자금을 마련하기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생활 시설에 거주하는 74.21%는 시설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자립센터 관계자는 “장애인 대부분은 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한다”면서도 “떠나고 싶어도 떠나면 큰 고생을 하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머물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은 필요한 편의시설로 안전손잡이, 출입문 문턱 제거, 미끄럼 방지 바닥재 설치 등을 꼽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무료로 설치하고 있지만 공공주택 단지 정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장애인 주거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유성현 임정혁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