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김미화의 위험한 곡예
입력 2010-07-22 17:46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가 빚은 불행… 투사보다 자유로운 희극인이 낫지 않나”
언론사를 지망하는 대학생과 신경민 앵커의 발언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그들은 앵커와 뉴스캐스터, 아나운서의 차이를 알면서도 신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옹호했다. 뉴스캐스터에게도 그 정도 발언권은 있다는 것이다. 되물었다. 신 앵커가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진격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가원수모욕죄입니다”라고 해도 똑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최근 코미디언 김미화씨의 트위터 논란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발언에 구멍이 많았다. 트위터 내용과 기자회견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트위터에 올린 푸념 섞인 글이 죄냐, KBS의 블랙리스트에 자신을 좌파로 찍어 출연을 못 한다, 그렇다고 KBS가 고소할 수 있느냐, 후배들을 위해 싸우겠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트위터에 올린 글은 개인의 일기장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하소연일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접근 가능한 상태에 올려졌다면 메시지이고 저작물이다. 더욱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침해했다면 법적 책임이 따른다. 그걸 알고도 글을 올렸으면 용기고, 몰랐다면 무지다.
블랙리스트는 있다고 본다. 보수든, 진보든 우호집단과 기피집단이 존재한다. 특정 매체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목록은 오히려 필수이지 않겠나. 그걸 몰랐다면 중견 방송인의 경력이 의심스럽다.
김미화씨가 좌파는 아니라고 본다. 그의 글은 소박하다. 반딧불이나 과꽃, 호미 이야기, 뭐 이런 글이 주류다. 그러나 그가 매일 나오는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그렇지 않다. 단지 이미지와 목소리를 빌려줄 뿐이라고? 그렇다면 인격이 없으니 법적 주체가 될 자격도 없다. 논란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방송 출연은 방송사와 출연자의 계약에 따른다는 것이 상식이다. 계약에는 출연자의 시장적 가치가 절대적 기준임은 물론이다. 코미디 시장에서 김미화씨가 어떤 지위에 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친정집에서 고소당한 딸의 심정”은 개인적인 소회라고 본다. 연예인으로서 저명성을 획득한 KBS에 순정이 왜 없겠나. 친정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부덕(婦德)일진대, 정말 딸이라면 바깥에 대놓고 친정 흉을 볼 수 있을까. “KBS 임원 여러분, 저에게 예의를 갖춰주십시오”라는 대목도 스스로 예의를 잃은 대목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대목은 비장감이 느껴진다.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를 위해 싸운다? 그렇다면 KBS의 출연금지 목록에 자신은 빠진 채 후배들의 이름이 올라있어도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출연 중인 MBC에서 우파라는 이유로 출연하지 못하는 연기자가 있어도 시비를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녀의 뜻이 그 정도의 투쟁의지를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익을 쫒는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물론 그녀의 뜻을 이해한다. 좌파라는 주홍글씨가 억울하고, 이념의 딱지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발언에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자신의 생각과 일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사가 아니라 예능인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 신분의 당사자에게 한 차례 경고도 없이 바로 소송에 돌입한 KBS도 방송사의 품위를 잃었다고 본다.
요즘도 퇴근길에 가끔 그녀가 진행하는 방송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불편하다. 나도 명색이 뉴스를 다루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김미화씨처럼 방대한 분야에 식견을 가지기 힘들다. 도우미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럴수록 믿음이 떨어진다. 걸출한 코미디언이 왜 그런 소극적인 역할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직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신경민처럼 정치권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사다리에서 내려올 때다. 코미디 환경이 예전의 ‘쓰리랑 부부’ 같지는 않지만 김미화 정도의 재능이라면 입지가 왜 없을까. 아슬아슬한 곡예를 접고 자유로운 희극인으로 훨훨 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