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아침마다 이별을 연습하는 남자

입력 2010-07-22 18:01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은 나이 들자 후사(後嗣)를 든든히 하려고 갖은 구실로 공신들을 주살했다. 전제군주 밑에서 신하들은 마음대로 사직할 수조차 없다. 연루자의 구족(九族)까지 멸하니 옥사(獄事)가 벌어질 때마다 죽는 자 수만 명. 그러다보니 관리들은 매일 아침 입궐할 때마다 처자와 이별의식을 치렀다. 저녁에 무사히 돌아오면 “이로써 오늘 하루를 더 살았구나”라며 서로 경하했다.

북한 관리들의 요즘 처지가 주원장 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지고 지난 3월 총살됐다. 김용삼 철도상은 2008년 노동자들이 기관차 부품들을 떼어내 고철로 파는 바람에 기관차 100여대가 폐차된 사건으로 처형됐다. 최근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권호웅 내각참사가 대남정책 실패를 이유로 총살됐다고 한다.

권 참사는 2007년 5월 17일 경의선열차 개통 행사에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와의 에피소드로도 기억에 남는다. 권 참사는 “리 선생, 붓을 놓으면 안 됩니다. 말로 해서라도 후손들에게 남겨야 합니다”라며 백로술을 권했다. 리 교수는 “20∼30년 길러낸 후배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화답했다.

전제군주 곁에서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오래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지금 북한 수뇌부가 조명록 오극렬 등 70∼80세 고령자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경이롭다. 지난달 반대파가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였다는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역시 80세였다. 늙음은 권력에 도전할 용기를 꺼트리지만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는 탐욕을 키운다. 강해서 살아남은 건지 살아남아서 강해진 건지 알 순 없지만 이들도 집에서는 목덜미를 문질러 보지 않을까.

아침마다 “오늘 하루 무사하길” 빌어야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마음껏 욕하고 국법을 무시하기 다반사며, 사소한 불만도 트위터라는 IT 신문고(申聞鼓)를 두들겨 분을 풀 수 있는 자유사회지만 지켜야 할 절대 금기가 있다. 성희롱과 여성비하 발언이다. 국회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기물을 깼다 한들 죄가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요즘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민주당 소속 군수가 이 덫에 걸려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깨끗하게 옷 벗는 게 정답이다. 정치인, 고위 관리는 수시로 경건하게 혀를 깨물며 자계(自戒)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안락한 회전의자와 영이별할 수 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