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기온마츠리(祗園祭)에서
입력 2010-07-22 17:45
‘비가 어울리는 도시’라니, 몽환적인 관광 포스터에나 해당될 수사다. ‘쓰유(梅雨)’라는 예쁜 이름이 있지만, 장마는 지루하고 심술궂었다. 구석구석의 습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마음까지 곰팡내가 날 지경이었다. 대체 언제 끝나느냐는 내 조바심에 교토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온마츠리가 무르익으면”이라고 했다.
날마다 어디선가 축제가 있다는 일본. 교토의 기온마츠리는 그 축제 중의 축제로 손꼽힌다. 지난 1일에 시작되었지만 얄궂은 비 때문에 흥도 날까말까 했다. 그나마 그 축제의 꽃이라는 ‘요이야마(宵山)’와 ‘야마보코준코(山?巡行)’가 코앞이라,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천여 년 전 이맘때도 어떤 탈출구가 필요했을 듯싶다. 긴 장마 끝에 역병이 돌고 마을이 죽어가자 악귀를 물리치고 활기를 되찾게 해 주십사 제사를 지낸 것이 기온마츠리의 유래다. 이후 여러 마을이 가마-산 모양의 ‘야마(山)’ 혹은 긴 창을 꽂은 모양의 ‘호코(?)’-를 만들어 소망을 기탁했다. 기도에 화답하듯, ‘야마보코’가 교토의 여름을 수놓을 즈음이면 장마는 물러가곤 했단다.
16일, 전야제 격인 ‘요이야마’의 저녁. 오락가락하던 빗줄기는 정말 멎었다. 출정 준비를 마친 야마보코에 등불을 밝히자 뒷골목은 꽃처럼 피어났다. 부유하는 불빛 사이로 알록달록한 유카타, 경쾌한 게다 소리가 넘실댔다. 금붕어 뜨기, 풍선, 튀김, 계란 센베이, 붕어빵, 빙수, 맥주. 노점상들이 빼꼭히 늘어선 골목에는 냄새와 웃음소리, 아우성이 둥둥 떠다녔다. 한여름 밤이었다.
17일, ‘야마보코준코’. 동네마다 열과 성을 다해 장식한 ‘움직이는 박물관’, 그 32개의 가마 퍼레이드는 기온마츠리의 하이라이트다. 악귀를 무찌른다는 길고 날카로운 창 외에도 잉어와 당랑, 소나무, 관음보살 등 역사와 신화에 근거한 수호신들의 면면이 진지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긴 세월, 그들도 우리처럼 각각의 신에게 무병장수를, 출세를, 좋은 인연을 빌었을 것이다.
중국 병풍, 페르시아 카펫, 그리스 신화, 파란 눈의 가마꾼 등 일본에서도 가장 전통적이라는 기온마츠리에서 종종 눈에 띄는 이방의 문화는 다소 의외다. 행복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 앞에서는 전통도 국경도 무색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내숭떠는 새색시 같던 도시를 이렇게 부추기는 것도, 내가 열 일 제치고 이 뙤약볕 아래 서 있는 것도 그 어떤 욕망 때문이 아닌가. 뻔하지만 제각각인 그 욕망을 위해 우리에게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신이, 얼마나 더 긴 세월이 필요한 걸까.
돌아오는 길에 부적 가판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학문성취, 지혜, 안전, 출세, 장수, 치병, 연애, 성공…. 무수한 욕망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집어 든 것은 ‘다복’이었다. 일일이 다스릴 수 없는 그 욕망들의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다는 듯이. 태양은 이제 너무 뜨거워서 한 줄기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싶었다. 아, 어쩌란 말인가, 변덕스럽기까지 한 이 욕망을!
성혜영(박물관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