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놀이

입력 2010-07-22 17:26


아기 때부터 요즘 ‘영어유치원’이라고 잘못 알려진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니던 아이가 만 4세에 유치원으로 왔다. 그 엄마가 어떤 소신으로 결정한 것인지 부정적 증상을 고치려고 온 것인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잘 적응했다.

아이는 유치원에 온 후로 책은 전혀 손에 들지 않고 열심히 놀기만 했다. 쌓기 놀이 영역에서 나무토막을 쌓아 여러 가지 구조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역할 놀이 영역에서 헌 넥타이를 목에 걸고 아버지처럼 놀아보기도 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유치원 마당 이곳저곳의 놀이기구를 타며 노는 것이었다.

맘껏 놀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웠는지 아이는 “엄마가요, 유치원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대요”라고 시무룩하게 말하곤 했다. 엄마가 다시 학원으로 보낼까봐 은근히 걱정도 했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즐겁게 노는 자체가 바로 공부라는 생각을 아이나 엄마는 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날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이 아이는 마당에 세워 둔 통나무 하나를 넘어뜨렸다. 통나무 밑에 있던 애벌레,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낀 아이는 마당에 있는 통나무를 모두 뒤집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원장님은 아이 옆에 앉아 “와. 지렁이가 있네. 애벌레도 있고. 너 정말 굉장한 공부를 하고 있구나” 했다. 아이는 “이게 공부라고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장님은 “그럼, 이게 바로 살아 있는 공부지” 하며 “그런데 이 애벌레는 어떤 종류인지 알아?” 했다. 아이가 모르겠다고 하자 다시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물었다. 아이는 “책을 봐요” 했다. 그리고 유치원에 있는 곤충 서적이나 과학 백과사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들은 아이가 통나무를 뒤집는 모습부터 이 활동에 대한 아이의 흥미가 만족될 때까지 모습을 모두 사진으로 찍었고, 책의 내용을 읽어 주었으며, 유아가 관찰한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도록 종이와 그림도구를 줬다. 인터넷을 찾아 자신이 더 알고 싶은 내용을 검색하게도 하였다. 아이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 만족되었을 때 선생님들은 그 과정의 사진과 그림들을 전시했다. 이 유아의 호기심과 탐구 과정은 다른 유아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이 유치원에서는 통나무 밑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유아들이 늘었다고 한다.

40분 단위로 시간표를 정해 놓고 교과 내용을 습득하게 하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다. 놀이는 유아기의 공부 방식이다. 1840년 유치원(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든 독일의 프뢰벨은 “놀이는 유아기에 나타나는 가장 최고의 모습이다. 놀이를 통해 유아는 전인으로 발달할 뿐 아니라 가장 예민한 마음 속 깊은 곳의 성향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했다. 유아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신 신성(神性)이 놀이 중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원영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