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지 일주일만에 숨진 탓티황옥씨 사건… “정신질환자와 결혼 시키다니…”
입력 2010-07-22 18:16
쩐카잉번, 베트남통신사 서울지국장에 묻다
서울거리에서 30대 중반 베트남 여성을 만났다고 하자.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를 첫 이미지는?
①다국적 기업의 화이트칼라 ②제조업 노동자 ③한국 남자와 결혼한 베트남 신부 ④베트남어 강사.
다수의 선택은 ③번일 것 같다. 베트남 여성에 대한 한국인의 평균적 이미지 역시 ③번에 가깝다.
쩐카잉번(36) 베트남통신사 서울지국장은 국립과학인문사회대학에서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전공한 엘리트여성이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 유창한 한국어와 통신사 지국장 직함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한국 남자랑 결혼했느냐는 질문이다.
위아래로 길쭉한 베트남은 동아시아인풍 외모의 북부인과 가무잡잡한 피부의 중남부인으로 갈린다. 지국장은 북부 출신이다.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인은 늘 놀랐고, 이런 말들을 했다. “시집왔구나.” 베트남 여자는 시집온 거고, 시집온 여자는 한 등급 아래였다.
여느 때처럼 한국 뉴스를 검색하던 지난 9일. 그는 베트남 신부 관련 뉴스 1보를 발견했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만인 8일 47세 정신질환자 남편에게 피살된 20세 탓티황옥씨 사건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당황하고 속상했죠.”
지난 20일 쩐카잉번 지국장을 서울 성북구의 지국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간 뒤였다. 사건 발생 후부터 탓티황옥씨의 화장한 유해가 고향인 베트남 껀터시로 돌아간 16일까지 일주일간 그의 사무실은 불난 호떡집처럼 바빴다. 전화는 사방에서 빗발쳤다.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지국으로 상황을 물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부끄러워하고 베트남에선 분노한다던 한·베트남 국제결혼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신중했다.
2008년 한국에 온 이래 쩐카잉번 지국장은 수백 명의 베트남 신부를 만났다. 그중 70%의 삶이 ‘평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그녀의 평가에는 신뢰가 갔다.
“제 기준은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가예요. 만나본 베트남 신부의 70%가 괜찮았어요. 나머지 30%는 여러 문제를 겪고 있어요. 남편 건강이 나쁘다든지, 경제적으로 어렵다든지. 알려졌듯 이런 저런 사고가 생기기도 해요.”
언제부터인가 한국어 잘하고 한국 사정에 밝은데다 베트남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둔 그녀에게 베트남 새댁들의 고민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는 베트남 신부들의 상담사가 돼 있었다.
“한번은 상담전화가 왔는데 남편집이 인터넷도 안 되고 주위에 사람도 없대요. 아주 산골이었나 봐요. 말 안 통하지, 털어놓을 데 없지. 남편한테 못 하는 말, 아주 답답한 거를 나한테 막 얘기했어요. 주로 그런 하소연이에요. 난 들어주고 달래고.”
베트남 신부의 삶을 말하면서, 반드시 구타 학대 협박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술 마시는 남편,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낯선 문화.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게 그렇듯, 그들의 고충도 예상 가능하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또 다른 여성은 이래요. 열심히 청소했는데 시어머니가 와서 다시 하라고 했대요. 며느리가 아니라 노예나 식모처럼 느껴진다나. 그런 게 문화차이예요. 베트남인은 침대생활을 하니까 방바닥 닦고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아요.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언어소통이고요.”
그는 관건이 처음 6개월이라고 했다. “가장 힘들고 제일 중요한 시기예요. 그걸 넘기면 잘 정착할 수 있어요. 우리 신부들 많이 힘들어요. 한국어 배우고 한국인과 오래 접촉해본 나도 특파원 처음 와서 얼마나 힘들었게요. 지식 있는 한국인은 괜찮아요. 일반인들은 가난한 나라 무시 많이 하잖아요. 경제 외모 많이 따져요. 베트남에 돌아가면… 한국에 가지 말라고는,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겠죠. 대신 한국 문화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해요. 알고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 모임에서 만난 베트남 새댁 얘기를 했다. “남편은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았어요. 몸도 불편하고. 그 옆에 앉은 신부는 너무 예뻤어요. 그게 보기가 너무…. 내가 생활이 괜찮으냐고 물어봤어요. ‘남편이 아파도 시댁이 잘해줘서 괜찮아요. 한국어 열심히 배워요. 여기서 잘 살아야 해요.’ 그래요. 그때는 내 마음이 진짜 안타까웠어요.”
탓티황옥씨 사건이 알려지고 베트남 현지 언론은 들끓었다고 했다.
“막 난리 났죠. 큰 신문은 다 보도하고. 비판 많았어요. (한국에 대해) 나쁜 말도 있었고. 특히 정신질환자와 어떻게 결혼을 시킬 수 있느냐, 그거에 대해서요.”
그의 말처럼 이 사건에서 논란의 핵심은 남편의 정신질환과 그걸 걸러내지 못한 부실 건강진단서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제결혼을 할 때는 정신병, 에이즈 등 2∼3가지 질병에 관한 건강진단서를 상호 교환하도록 규정돼 있다. 남편은 지난 8년간 57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중증 정신질환자였다. 하지만 탓티황옥씨에게 전달된 K병원 진단서에는 이런 기록이 없었다. 결혼중개업체도 등록되지 않은 곳이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 사하경찰서 측은 “병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남편의 치료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병원 측 단순 실수인지, 중개업체와 병원의 거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편은 구속된 뒤 정신질환 감정을 위해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로 이감됐다. 중개업소 관계자 두 사람은 입건됐다.
베트남의 모든 관심은 후속조치에 쏠려 있다. ‘현재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쩐카잉번 지국장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태도를 보자면, 적극적이고 신경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지난주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쩐쫑또안 주한 베트남 대사를 만나 위로금도 전달했고, 이것저것 법과 정책도 발표되고 있어요.”(이명박 대통령도 20일 박석환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를 통해 유가족들에게 조의금을 전달하고 종합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잠시 후 사무실 책꽂이에서 한국 보건복지부가 2007년 발간한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생활안내서’를 꺼내왔다.
“베트남 신부 20명한테 이 책자를 아느냐고 물었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책 속에 정보가 많아요. 한국 오기 전에 이런 책을 나눠주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교육과 취업 기회도 많으면 좋겠어요. 베트남에선 대부분 맞벌이를 해요. 남녀평등 의식은 한국보다 높죠. 여기 와 있는 신부들도 대부분 일하고 싶어 해요. 일해야 진짜 한국사회에 편입될 수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 수첩을 접고 물었다.
“베트남 신부들, 예비 남편을 3∼4일 만나고 결혼을 결정하잖아요. 그런 결혼, 할 수 있겠어요?” 웃느라 한참 답이 없다가 질문이 되돌아왔다.
“당신은요?”
“저는 싫죠. 그렇게 절대 (결혼) 못하죠.”
“당연하죠. 나도 못해요.”
“아는 베트남 처녀가 (중개업소 통해) 한국 남자랑 결혼하겠다고 하면요? 뭐라고 할래요?”
이번에도 웃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급하게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혼관 얘기가 한참 이어졌다.
“‘밤은 새봐야 얼마나 긴지 알 수 있다’는 베트남 속담을 말해주겠어요. 사람은 오래 알아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시간이 중요해요. 베트남 여성들도(여기서 또 얘기를 머뭇댔다) 결혼할 상대방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결혼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사랑하고 감동하고 이해해야 할 수 있는 게 결혼이에요.”
베트남 언론에 비친 한국
베트남 신부 탓티황옥씨 피살사건이 나고 베트남 현지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들려왔다. 국내 모대학 전문가에게 현지 분위기를 물었다. “베트남 사람은 이 사건에 별로 관심도 없어요. 한국이 떠드니까 괜히 더 시끄러워졌지.” 진실이 더 궁금해졌다.
베트남어 전공자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 언론을 뒤졌다. 사건은 8일 일어났다. 한국 언론은 9일, 베트남에선 10일 보도가 시작됐다. 뚜오이째, VnExpress(사진)등 유력 일간지는 한국 영자지 등을 인용해 소식을 전했다. 직접 기사를 작성하지 않은 여성신문 푸느 등도 주요 언론 기사를 홈페이지에 전재했다. 관심 있는 스토리란 뜻이다. 12일이 지나면서 사실 보도는 분석, 진단으로 변화했다.
그중 부(富)를 위해 결혼을 선택하는 베트남 풍토를 비판한 사이공쟈이퐁(15일자)의 보도는 눈에 띄었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에 속한 이의 기고였다.
“연구 결과, 대만(중국)과 한국 남편을 맞는 베트남 여성의 64%가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메콩강 일대에서는 빨리 부자가 되기 위해 외국인 사위를 찾는 부모 혹은 가정이 적지 않다. 먼 곳 남편과 결혼해 효를 실천해야 하는 21세기판 ‘끼에우 아가씨(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베트남 고전소설 속 주인공)’ 현상에 가슴이 아프다. 딸과 여동생의 국제결혼을 종용하는 가족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뚜오이째(15일자)는 “정신병력 검사가 엉터리라고 들었다. 1+1이 몇이냐, 하노이가 무엇이냐, 이런 질문에 답하면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라며 이번에 문제가 됐던 부실한 국제결혼 중개 시스템을 지적했다.
같은 신문은 앞서 12일 ‘350만동(베트남 화폐단위)의 값어치’라는 기사에서 (결혼 과정에서) 한국인 남편이 피해 여성 집에 350만동(약 22만원)을 건넸다고 전했다. 베트남 신부의 목숨 값이 22만원이었다는 얘기다.
기사에는 댓글도 꽤 많았다. 인터넷 토론 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베트남에서는 흔치 않은 현상이었다.
“정말 무섭다. 한국 남성이 베트남에서 아내를 얻어 가는 걸 금지해야 한다.”(VnExpress)
“비슷한 사건을 모른척했다가 이런 비참한 일이 벌어졌다. 베트남 아가씨들아,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VnExpress)
“한국 정부에 건의한다. 베트남 신부를 위한 베트남어 핫라인을 설치하라, 한국인 남편 및 중개업체 형사처벌 상황을 공개하라.”(VnExpress)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