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공간 너머] 달타령, 임과 함께, 아파트
입력 2010-07-22 18:14
“저기 저기 저 달 속에…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수백 년간 불려온 우리 민요 ‘달타령’의 한 소절이다.
이 노래에서 집이 들어설 장소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집은 가난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삼간초가요, 같이 살 사람은 부모이며, 집의 내구연한은 천년만년이다. 우리 선조들은 ‘집 자체’가 아니라 집을 둘러싼 ‘공간’이 이상적인 삶을 제공해주리라 믿었다. 이 노래에는 무릉도원이나 달나라처럼 신분과 계급에 따른 속박이 없는 곳이라면, 그리고 부모를 모시고 효(孝)를 다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도 좋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부모와 함께 산다 함은 대를 이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천년만년이라는 연한은 이와 관련된다.
1972년 발표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남진의 ‘임과 함께’는 달타령과 같은 구성을 취했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이 노래에서 집이 들어설 장소로 지목한 ‘푸른 초원 위’는 달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지만, 영화 속에서나 나올 만한 곳으로 이웃을 배제한 ‘가족 또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림 같은 집’은 상당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만 지을 수 있는 집이다. 장소뿐 아니라 ‘집 자체’의 디자인과 구조도 행복의 중요 구성 요소로 표현됐으니, 이 대목에는 집과 돈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세태가 반영돼 있다. 이 노래의 집은 또 부모가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사는 집이다. 집의 내구연한은 100년으로 줄었다. ‘임과 함께’만 사는 집은 대물림이 필요 없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이니, 집도 그만큼만 견뎌 주면 그만이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984년, 윤수일이 발표한 ‘아파트’도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이 노래에서 집이 들어선 장소는 아주 구체적이다. ‘다리를 건너…갈대숲을 지나’ 도착하는 곳은 서울 강남이다. 그곳에 있는 아파트는 내가 지은 집이 아니라 이미 다 지어져서 나를 기다리는 집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내 ‘돈’을 기다리는 집이다. 집의 구조나 디자인에 대한 묘사는 당연히 필요 없다. 그냥 건설회사가 만든 대로, 자금 사정에 따라 ‘평형’만 정하면 그뿐이다.
이 아파트는 누구와 함께 사는 집도, 오래 머물러 사는 집도 아니다. 그저 ‘값이 오를 때’를 기다려 바로 떠나야 하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이다. 기다림의 의미도 이중적이다. 3년만 기다리면 양도세가 면제되고, 30년만 버티면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집의 사용가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교환가치만 전면에 떠오른 새 시대를 이보다 함축적으로 묘사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영어는 하우스(House)와 홈(Home)을 명백히 구분하나 우리말로는 둘 다 집이다. 물리적 집 House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과 정서적 집 Home이 흔들린 것 사이에는 상당한 관계가 있지 싶다. 옛날 집은 아름다운 경관, 좋은 이웃, 사랑하는 가족과 굳게 결합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집에는 그런 요소가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하다. 가격 상승 전망, 또는 재개발·재건축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집이 더 이상 살기 어려울 만큼 위험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경축! ○○아파트 안전진단 합격”이라는 현수막을 내건다. 자기 집이 위험하다는데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이 황당한 현실에서 집은 더 이상 삶에 ‘안정감과 지속성’을 제공하는 원천이 아니다. 오늘날 자기가 태어난 집, 또는 어렸을 때 살던 집에 찾아가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것은 겨우 40여년 전의 일이다. 이후 아파트는 정말 놀라운 속도로 ‘번식’해 오늘날에는 한국인의 표준적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집값’도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 요소가 됐다. 아파트 값이 올라도 아우성, 떨어져도 아우성이다. 집 문제를 ‘가격’ 문제로만 접근하는 한, 앞으로도 이런 아이러니는 계속될 것이다. 더구나 지난 40여년 간 쉴 새 없이 지어온 아파트들은 앞으로 꼭 그 속도로 헐릴 것이다. 그 엄청난 건축폐기물이 우리와 우리 후손의 삶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집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 새 노래가 빅히트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