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어머니의 코

입력 2010-07-22 18:08


“저 외국인 코 한번 크네!”

엘리베이터 안의 남자가 말했다.

“누구요? 저요?”

내 친구 준이 흥분하며 물었다. 준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외국인이라는 말에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니요, 저 외국인요.”

남자가 대답했다. 이미 누구 이야기인지 눈치 챈 나는 민망한 표정으로 얼굴을 돌렸다.

사춘기 시절 나는 코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코가 너무 길고 뾰족하고 반듯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들창코더라도 작은 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커가면서 그런 내 코에도 차츰 적응이 됐다. 내 코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외할아버지는 외증조할머니에게 이 코를 물려받았다. 내 코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자 내 뿌리였다.

한국 사람들은 한민족의 자부심과 부모 공경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한번은 한국인 친구가 “한국에서 문신이 인기 없는 이유는 부모가 준 몸을 그대로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성형수술은?” 내가 물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얼굴을 뜯어고치는 것을 부모 공경이라고 부를 수 있나? 민족적 정체성을 수술을 통해 없애면서 민족의 자부심을 말할 수 있나?

서울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압구정동에 가면 왜 다 미남미녀뿐이고 텔레비전의 여배우들은 왜 모두 비슷하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어 수업에서 성형수술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나서 그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압구정동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성형수술’ 간판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충격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내게 성형수술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형이나 심한 사고를 당한 후, 혹은 유방암 수술 뒤에 부득이하게 시행하는 외과수술의 하위범주일 뿐이었다.

개인적 사정도 자세히 모르면서 성형수술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인은 왜 그토록 외모에 집착하는지 이해 못하겠다. 성형수술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도 납득하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재능과 취약점, 장점과 단점이 섞인 유전적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선물세트의 내용과 조합에 환경과 노력을 보태 사람의 미래는 결정된다. 어떤 사람은 변호사가 되고 어떤 사람은 뇌 전문가가 된다. 피아니스트가 되거나 작가가 되는 사람도 있다. 모델이나 미스코리아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이 정해준 대로 자신의 길을 간다. 가끔은 인간이 자연을 속일 때도 있고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도 한다.

1987년 영화 ‘더티 댄싱’으로 유명해진 배우 제니퍼 그레이는 코가 커서 이상적인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녀들은 자신과 똑같은 콤플렉스와 열등감을 가진 듯 보이는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레이는 나중에 코 수술을 했다. 수술 뒤 그녀는 더 예뻐졌지만 더 이상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 큰 코가 작아지자 그녀를 특징짓던 그녀만의 매력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는 내 코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다. 만약 “저 외국인 코 한번 크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으면 “네, 맞아요. 우리 엄마에게 물려받은 코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