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블랙코미디 주인공 되다… 한 여성 코미디언을 둘러싼 논쟁, 왜?

입력 2010-07-22 18:06

1990년대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이었다. 1984년 KBS 공채 2기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했다. ‘쓰리랑 부부’ 코너에서 일자눈썹 ‘순악질 여사’ 캐릭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화장실 청소부, 셋방 사는 아내 등 서민적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다. 11년째 인기리에 방송되는 KBS ‘개그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여느 연예인과 구분되기 시작한다. 사회봉사나 시민단체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녹색연합, 참여연대, 유니세프, 여성단체연합, 나눔의집, 사랑의열매 등 수십 개 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사회운동에도 발을 들여놓는다. 연예인들을 데리고 미선·효순 사망사건 촛불시위에 참여했고, 호주제 폐지 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이라크 파병 반대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이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시민운동가나 사회사업가로 재조명하면서 연예인 사회활동의 모범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사회 참여를 실천하는 연예인은 많지 않았다.

2003년 8월 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평가하는 MBC 시청자위원회 위원이 됐다. 같은 해 10월 시청자위원을 그만두고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가 된다. 여성 코미디언으로서 본격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자리에 앉은 것은 처음이다. 이 프로그램을 맡으며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친노(親盧)’ ‘반미’ ‘좌파’라는 골치 아픈 논란을 안겨준다. 김미화(46)에 대한 이야기다.

폴리테이너

독립신문, 미디어워치, 빅뉴스, 공정언론시민연대, 자유주의연대, 방송개혁시민연대 등 보수 성향의 미디어와 시민단체들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편파방송이라고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종종 진행자인 김미화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김미화씨가 반미입장을 견지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등 공정치 못한 방송을 하고 있다.” “김미화씨는 지난 천안함 정국에서도 시종일관 군 당국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던졌다.” “MBC 시청자위원회는 이번 트위터 사건과 관련해 김미화씨의 방송 출연 자격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런 식이었다.

그에게는 ‘친노 연예인’이라는 명찰도 붙었다. 김미화가 전문성이 없음에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서 시청자위원으로, 시사프로 진행자로 발탁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KBS ‘TV, 책을 말하다’(2005년 5∼12월), SBS ‘김미화의 U’(2005년 12월∼2008년 5월) 등 그가 진행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늘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 직후 SBS 프로그램 진행자 자격으로 한선교 아나운서(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와 함께 노무현 당선자에게 하회탈을 전달한 것, 2007년 인터넷기자협회가 주최한 노 대통령 초청 토론에서 사회를 본 것 등이 ‘친노’의 증거로 제시됐다. 1992년 김미화의 개그 코너에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선대본부장이 출연한 것까지 거론됐다.

김미화는 어느새 ‘노무현 정권에서 특혜를 누린 대표 연예인’으로 규정됐다. 2007년 한 종합일간지는 ‘정치하는 연예인 폴리테이너’ 기사에서 김미화를 ‘폴리테이너’로 지목했다. 김미화는 이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정정보도가 이뤄졌다.

정권이 바뀌고 난 2009년 초, MBC 신임 경영진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교체론을 꺼냈다. 라디오 PD들이 집단 반발했고, 김미화는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김미화는 한 인터넷신문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 매체는 ‘김미화, 1992년부터 盧와 손잡고 정치 참여’ ‘친노 연예인 어떻게 될까’ ‘반미방송 김미화의 변명’ 등 수십 건의 비판 기사를 내보냈다. 올 초 1심 재판부는 이 매체에 배상금 700만원을 지불하라며 김미화의 손을 들어줬다.

트위터 파문

김미화는 2000년 이후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사회활동가로 일반 연예인과는 뚜렷이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그 결과, 각종 조사에서 여성 리더로 선정될 만큼 영향력도 커졌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김미화의 정치성향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됐다.

이달에 터진 ‘블랙리스트 사건’은 서서히 밀도를 높여가던 김미화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마침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미화는 지난 6일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블랙리스트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 달라”는 요지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글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KBS는 곧바로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해명에 나서는 한편, 김미화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19일 오전 김미화는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 검은 정장 차림으로 나와 착잡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는 이번 일이 단순히 제 트위터 글로 우연히 촉발된 것만은 아님을 잘 압니다. 제가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후 일부 인터넷 신문과 매체는 저에게 ‘정치하는 연예인’ 이른바 ‘폴리테이너’라는 멍에를 씌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제가 반문합니다. 제가 정치하는 것 보신 분 있습니까?”

정치를 한 적이 없는데 정치하는 연예인으로 분류됐고, 그것 때문에 방송출연을 못하게 됐다는 항변이다. 이제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해보자.

좌파 논란

김미화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단연코 한 번도 정치권에 기웃댄 적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나온 인터뷰 기사들에서도 “정치에 관심 없다” “코미디언으로 평생 살고 싶다”는 얘기가 일관되게 발견된다. 주변의 증언도 비슷하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연출자였던 정찬형(52) PD는 “김씨가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얘기가 왔다면 내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년퇴임한 홍순창(59) 전 KBS 예능국 PD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뭘 한다면 미화는 앞장설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중립”이라고 했다. 김미화가 정당에 가입한 적도 없다. 그런데 왜 김미화는 ‘정치하는 연예인’으로 규정됐을까?

이문원 미디어워치 이사(KBS 시청자위원)는 “김미화씨는 프로그램 진행 방식부터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좌파적이다. 김미화씨의 친노 이력은 20년 가까운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변희재 빅뉴스 대표도 “김미화는 참여연대 홍보대사를 했고, MBC PD수첩 사건 때 집회 나가서 PD수첩 지지발언을 했다. 그러면 난 좌파다, 뭐가 문제냐? 이렇게 나오는 게 옳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은 최근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김미화씨가 정치와 대중문화의 경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고 논평했다. 김미화는 한 번도 정치에 기웃댄 적이 없다는데, 한나라당은 그녀가 정치 근처에 서성대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테이너

정찬형 PD는 김미화를 좌파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프로그램과 진행자를 동일시하는 시각이 과연 합리적이냐고 묻는다. 아이템이나 인터뷰 상대를 결정하고 질문을 구성하는 건 전적으로 스태프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만약 그들 주장대로 우리 프로그램과 김미화씨가 좌파적이라면 어떻게 동시간대 청취율 압도적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왜 우리한테 소송을 걸어온 사람이 한 명도 없겠느냐”고 반박했다.

여성단체연합, 여성재단 등에서 일하는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미화씨가 여성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개인의 인생사 때문이었다”며 “미화씨가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와 이혼 사실을 공개했는데, 비슷한 아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오씨는 “연예인에게 시민단체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연예인을 의식 있는 문화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연예인의 사회활동은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환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는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을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한국에서는 ‘정치적’이라고 불리는 순간, 특정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곡해된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정치적이다, 이렇게 낙인찍히면 정치나 하지 왜 방송하느냐, 이런 말이 바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반전(反戰)이나 환경, 여성, 인권 등 사회적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걸 ‘정치적’이라고 규정하면 그 연예인에게 치명적이다. 한국에서 정치적이라는 말이 곡해되기 때문이다.”

그는 “폴리테이너(정치 참여 연예인)와 소셜테이너(사회 참여 연예인)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사회가 연예인의 사회활동을 정치활동과 구분해서 봐준다면 연예인들의 사회 참여는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코미디

김미화는 종종 트위터를 통해 자기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그 중에는 자신을 둘러싼 좌파논란에 대한 피로감이 묻어나는 대목도 발견된다.

“좌? 우? 블랙? 화이트? 정말 지치지도 않습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김제동은 좌파도 우파도 빨갱이도 아니다!!라고 인터뷰를 했더만, 나두 남경필 의원하고 친군데…왜 제동이 얘기만 하구 내 얘긴 안하는 거유?”

“오른쪽 뇌동맥이 부풀어 있어 다행이지!! 좌쪽 뇌동맥이 부풀어 있었으면 또 오해받을 뻔했어요!!”

인터넷매체와 소송을 벌인 김미화는 ‘좌파’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SBS 사장 확인서까지 받았다. 1992년 12월 ‘출발 20~30대의 물결문화제’ 공연에 김미화가 출연하고 게스트로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을 등장시킨 것은 SBS 담당 PD가 섭외한 것으로 김미화씨 개인의 정치적 판단이 아니었음, 2002년 대선 생방송에서 김미화씨가 노 당선자에게 하회탈을 전달한 것은 SBS 제작진이 준비한 이벤트였으며 김미화씨 개인의 정치적 판단이 아니었음을 SBS 사장으로부터 확인하는 내용이다.

김미화는 “저를 제발 코미디언으로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치적 프레임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 달라는 호소다. 정찬형 PD는 “김미화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미화라는 한 여성 코미디언이 지난 10년간 겪어온 일을 보십시오. 이게 비극입니까 희극입니까. 비극이면서 희극이죠. 블랙코미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