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동 성폭행 피의자 동생이 쓴 속죄의 편지 “행복한 가정에 씻을 수 없는 상처”

입력 2010-07-21 21:23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주택가.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장안동 아동 성폭행 사건 피해자 A양의 어머니를 만났다. A양 가족은 10일 전 2년간 살던 동네를 떠나 새 집으로 이사했다. 간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A양 어머니는 조금은 진정된 듯했다.

경찰관은 A양이 즐겨 먹는다는 과자 ‘빼빼로’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이런 거 안 사와도 되는데….” 수줍게 인사한 A양 어머니는 과자와 함께 받아든 봉투를 뜯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지 2장이 담겨 있었다. 성폭행 피의자 양씨의 동생(23)이 형 대신 쓴 참회의 편지였다.

누가 보낸 편지인지 설명하자 A양 어머니는 “나쁜 놈이요?”라고 되물었다. 베트남 출신인 A양 어머니는 한글을 읽을 줄 몰라 대신 소리 내어 읽어줬다.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지만, 먼저 소중한 따님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귀 기울여 듣던 A양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양씨의 동생은 편지에서 ‘(A양 가족이) 이 일로 아픔을 가슴에 갖고 살면 안 되는데, 힘들고 아파하면 안 되는데, 기억 속에서 하루 빨리 잊어야 할 텐데. 꼭 그래야 하는데. 글을 쓰면서도 수천 번 생각을 합니다’라고 썼다. A양 어머니는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 듯 “용서는 안 해요. 용서 못해요. (A양) 아빠랑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양씨 동생은 편지 말미에 A양에게 보내는 추신을 남겼다. “미안하단 말론 어떤 것도 나아지지 않겠지만 하루빨리 웃음을 찾길 빌어줄게. 내 인생을 걸고서라도 너의 아픔 모두를 이 아저씨가 짊어지고 갈 테니 이 힘든 줄을 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길 빌게.” 애써 무표정하던 A양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며칠 전 전학한 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A양은 집에서 아버지와 놀다 조금 전 잠들었다고 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그는 편지를 꼭 쥔 채 힘들게 웃어 보였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