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代 탈북자, 中 해커집단 가담까지… 꿈 찾아 왔는데 지독한 생활고에 범죄 소굴로

입력 2010-07-21 21:22


탈북자 양모(25)씨. 그가 부모와 가족을 놔두고 북한을 떠난 건 2001년. 나이 16살 때였다. 혼자 북·중 국경을 넘은 소년은 중국와 베트남 등 몇 나라를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게 됐다. 탈북 후 6개월이 훌쩍 넘어서였다.

이듬해 탈북자 사회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 생활을 끝낸 소년은 자유의 생활을 시작했다. 북한에서의 학창시절 트럼펫을 불었던 경험을 살려 한 대학 음대에 입학했다. 전공은 트럼펫이었다. 이때만 해도 그에게 남한은 기회의 땅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비싼 레슨비와 실기수업비가 대학생활을 가로막았다. 하나원 생활을 마친 뒤 받은 정착지원금으로 버텨봤지만 생활비와 학비를 대기도 벅찼다. 2년 정도 버티다 결국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탈북자 출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 남한 사회는 차가웠다. 특별한 기술이 없고, 연고 역시 뚜렷하지 않은 그에게 안정된 직장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PC방 종업원 등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탈북자를 상대로 하는 브로커로부터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느덧 20대로 들어선 소년은 2006년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원하던 가족은 보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그렇게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그에게 다시 제안이 들어왔다. 중국인과 재중동포들이 주축이 된 해커 조직에 가담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조직에 몸담게 된 그가 맡은 일은 온라인 교육업체 등 국내 영세 업체를 상대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협박 전담이었다. 조직이 하던 일은 국내 업체들의 홈페이지에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말에 능숙하다는 이유로 공격 업체에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렇게 2년 이상을 보냈다. 해커 집단의 우두머리는 한 달에 1000위안(약 17만원)도 안 되는 돈을 줬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던 그는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양씨는 ‘이런 짓 하려고 목숨 걸고 탈북한 게 아니다’고 고민했다. 언제든 중국 공안에 잡혀 북송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다. 양씨는 지난 2월 해커 조직을 어렵게 빠져나왔다. 한국에 있던 지인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 한 탈북자 지원 단체는 양씨가 수년 전 주민등록증 위조 문제로 수배된 상황을 파악했다. 첩보를 받아 수사하던 검찰은 이 단체를 통해 양씨의 귀국을 종용했다. 양씨는 결국 지난달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그는 조사받으면서 “이제는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위재천)는 2007년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국내 9개 온라인 업체에 디도스 공격을 가해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고, 그 가운데 2개 업체로부터 500만원을 뜯어낸 혐의(공동공갈 등)로 양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양씨가 속했던 중국 해커 조직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악성 코드를 심은 연예인 사진을 올려놓고 이를 다운받게 하는 수법으로 컴퓨터 2만여대를 디도스 공격용 좀비PC로 사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양씨처럼 어린 나이에 탈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 범죄에 노출돼 있다”며 “탈북자 지원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