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어느 이라크 父子의 7년 갈등… 反美 아들, 親美 아버지 쏴

입력 2010-07-21 21:25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예닐곱 발 정도.”

미군에 저항하는 수니파 반란군 전사인 압둘 아흐마드(32)의 총구는 그의 아버지를 겨눴었다. 천륜을 어기는 범죄였지만 아들은 미국을 위해 일한 아버지를 모두가 증오했다며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이라크 지방도시 사마라의 교도소에서 친부살해 혐의로 수감 중인 압둘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미군 철군계획 논란 중에 터진 이 이라크 가족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이번 전쟁이 이곳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아흐마드 가정에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 건 바로 2003년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때문이었다.

공군 준위 출신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 치하에서 정부 비방죄로 투옥된 적이 있던 아버지 하미드 아흐마드(52)는 이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기대했다. 영어를 잘했고 미국을 동경했던 하미드는 곧 미군 부대에 취직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게 꿈이었다.

하미드의 비좁은 집은 그러나 이념이 충돌하는 현실의 축소판이었다. 세 아들, 한집에 사는 조카까지 모두 수니파 극단주의 반란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미군의 이라크 점령 후 이라크인 누구나 미군이냐, 반군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친미주의자 하미드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 부대에서 일한 지 1년이 안돼 정보 유출 혐의로 1년여를 복역해야 했다. 나중에 무죄로 판명됐지만 그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을 향한 그의 열망은 식지 않았다. 미국을 상징하는 액세서리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닐 정도였다.

가정에서 그는 점점 고립돼 갔다. 조카와 아들은 ‘스파이다, 배신자다’라며 끊임없이 협박했다. 조카는 “당신의 머리를 벌레처럼 짓밟아버리겠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7년여의 가족간 갈등이 파국으로 끝나는 운명의 날이 왔다. 반란군 지도부로부터 하미드를 살해하라는 지령이 떨어진 것. 6월 어느 날 밤 아들 압둘은 AK-47 소총을 들고 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대가로 5000달러를 받았다.

차가운 감방의 압둘은 이제 후회의 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그렇게 했어요. 내 뜻이 아니었어요”라고. 이번 사건은 미국을 향한 이라크인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NYT는 미군 철수 이후 미군을 위해 일한 이라크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