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명품족 많은 나라

입력 2010-07-21 17:47

배고파 먹는 밥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먹는 밥은 어떻게 다를까. 필요성과 존재감 중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의 문제다. 우리의 소비행태는 대강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속해 있을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생존을 위한 소비, 즉 상품의 사용가치를 얻기 위한 소비에 초점을 맞춰 경제이론을 편다. 필요에 따른 구매를 전제로 하고 가격 조건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소비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식이다.

반면 사회학에서는 과시적 소비를 더 중시한다. 미국의 소스타인 베블렌(1857∼1929)은 남보다 돋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소비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사치품 가격이 오를수록 주변을 의식해 구매욕구는 되레 왕성해진다는 ‘베블렌 효과’의 속뜻이다.

프랑스의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소비의 사회-그 신화와 구조’란 책에서 아예 소비의 본질을 행복 안락함 풍부함 성공 위세 권위 등을 드러내기 위한 인간의 욕구활동이라고 봤다. 소비가 타인과의 차이를 추구하는 인간 욕망의 발현이자 현대 대중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는 구매자 자신의 필요 그 자체보다 타인을 의식한 존재감 때문에 이뤄진다는 얘기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디자인과 브랜드를 좇아, 가지고 있는 멀쩡한 상품을 버리고 새 상품 구입에 열을 올린다. 극단적인 경우가 명품에 대한 맹목적 추종, 이른바 명품족의 탄생이다.

국내외 140여개의 유명브랜드를 한데 모아놓은 여주프리미엄아웃렛에 가보라. 연 400만명이 몰린다는 약 8000평의 매장은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옷이 없어서, 가방이 낡아서, 신발이 찢어져서 그곳을 찾는 게 아니다. 고가의 명품을 남보다 앞서 하나라도 더 값싸게 건지겠다는 뜻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매킨지앤드컴퍼니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 명품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호의적인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고가품 구입 후 후회하거나 죄의식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미국은 대략 전체의 10∼15%였으나 한국은 5%에 불과했다. 명품 과시가 나쁘다고 보는 응답자도 한국은 22%로 일본 45%, 중국 38%, EU 27%, 미국 27%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2009년 현재 우리의 GDP 규모는 전 세계의 1.43%에 불과한데 고급 소비재 시장에서 한국의 명품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4%(약 40억 달러)나 된다. 한국은 엄청난 과시소비국인 셈이다. 명품족의 나라, 부끄러운 별명이 또 하나 생긴 듯하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