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국세청장의 자격
입력 2010-07-21 21:42
“본인의 청렴성과 공정성은 물론 외부 압력 없어야 청장 제대로 할 수 있어”
새 국세청장은 누가 될까. 백용호 전 청장의 청와대 입성으로 공석이 된 국세청장에 어떤 인물이 올지 궁금하다.
현재 거론되는 사람들은 현직에서는 이현동 차장, 전직으로는 주로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몇몇 인사들이다. 이 차장의 경우 경력 등으로 볼 때 현직 인사로는 가장 적임자라는 것이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백 전 청장이 올 연말까지 재임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갑자기 영전하는 바람에 그 뒤를 연말쯤 이으려던 이 차장이 오히려 곤혹스러워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전직 국세청 관료들 중에는 김앤장, 태평양 등 유명 로펌에 있는 사람들이 부상하고 있다. 세무관련 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도 떠오르고 있다. 물론 백 전 청장의 경우처럼 세무행정 문외한이 깜짝 발탁될 수도 있다. 국세청 직원들은 이번에는 내부 출신 인사가 되기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국세청장이 되느냐보다 어떤 자격을 갖춘 인물이 되느냐다. 뻔한 소리 같지만 내 생각은 청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국세청 직원들의 수뢰사건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직원들끼리 뇌물을 나누는 은어가 나돌 정도로 빈번했다.
돈에 관한 경계심이 다른 부처 공직자들에 비해 느슨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보니 현직 청장까지도 그런 사건에 연루되는 일이 잦았다. 백 전 청장 직전 3명의 청장들은 하나같이 ‘돈문제’로 감옥에 있거나 해외도피 중이다. 국세청장 자격을 언급하면서 돈 운운하는 게 민망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돈 밝히지 않고, 돈 안 먹을 각오가 된 사람’이 청장이 돼야 한다. 조직의 수장이 인사를 빌미로 아랫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권한을 악용해 외부인사에게 돈을 받고 하는 일들이 다른 정부 부처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나.
공정한 인사를 할 능력과 자세 역시 청장의 필수 조건이다. 국세청 직원들은 다른 공무원들보다 인사에 아주 예민하다. 승진 여부와 보직에 따라 권한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는 퇴직 후의 몸값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인사 때만 되면 온갖 연줄을 통한 청탁이 비일비재하다. 이 인사권의 정점에 청장이 있다. 직원 2만여 명의 인사권을 사실상 청장 1인이 행사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인사 잡음이 끊임없었고, 사고가 잇따랐다.
백 전 청장 부임 이후 인사 로비를 한 직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불이익을 줌으로써 공정한 인사 문화가 정착됐다고 국세청은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백 전 청장이 단행한 마지막 간부 인사에서 기업의 법인카드를 사용하면서 유흥업소를 드나든 인물이 승진하고, 최고 요직에 발탁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별 얘기가 다 나돈다. 백 전 청장도 어쩔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압력이 왔다느니, 이 차장 등 국세청 내 TK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등 미확인 설들이 이곳저곳서 들린다.
인사권자의 주관적 판단이 절대적인 인사 문제에서 ‘공정성’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대다수가 봤을 때 쉽게 납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올 가을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이 호되게 당할 일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청렴과 바른 인사’ 두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훌륭한 국세청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아우르는 필요충분조건은 통치권자와 이른바 측근들의 자세다. 통치권자 입장에서 보면 국세청은 ‘매력적인 조직’이다. 누구든 혼낼 수 있는 ‘세무조사’라는 합법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드는 순간 국세청은 물론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새 국세청장에 누가 오든 그가 징세기관의 장으로서 세수확보라는 고유한 업무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야겠다. 그것이 결국 국민과 나라를 위한 길이 아니겠는가.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