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 2010] 원조받던 한국, 세계경제 질서 재편 주역으로 도약
입력 2010-07-21 22:05
이준 특사는 1907년 7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을사늑약의 무효와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러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준 특사는 일본의 반대공작과 강대국의 무관심 등으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이 특사는 결국 이국땅에서 외롭게 숨졌다.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회의에도 초청받지 못한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자락이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2010년 이준 특사의 고국 대한민국은 오는 11월 제 5차 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다. 나라를 강제로 뺏긴 경술국치를 겪은 나라가 지구촌 유지모임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은 우리 국격의 상승을 보여준 극적인 반전이다.
◇한국,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나서다=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2000년대의 IT 혁명을 잘 이끌면서 세계속의 신흥경제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흥국가의 이미지만 넘쳤을 뿐 글로벌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해본 적이 거의 없다. 선진국이 만든 규칙을 받아들이고 지키자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세계경제를 규율하는 운영그룹에 진입하게 됐다. 을(乙)의 경제국가에서 갑(甲)의 위치로 발돋움한 것을 만방에 과시하는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G20은 선진국 모임인 G7의 대안으로 마련된 모임으로 세계 경제를 다루는 사실상 최고 논의기구다. 이런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G20 정상회의 개최는 당장 드러나는 가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국격과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북대치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아왔다. 능력이 있어도 경쟁국보다도 값어치를 제대로 못 받는 보이지 않는 홀대를 겪어온 것이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멍에를 벗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얻을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한국 제품이 1%의 디스카운트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100%의 제품을 팔고도 99%의 수익을 얻은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없어져 제값만 받게 되면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팔아도 1%의 수익을 더 올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 목표가 4100억 달러인데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해소돼도 약 41억 달러의 수출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국제 사회 리더십 제고 기회=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나라다. 이는 개도국들이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개발과 외환위기 극복 등을 통해 G20의 어떤 나라보다도 개도국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노하우를 전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를 통해 각국 간 개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역할도 맡을 수 있다.
최빈국과 신흥국, 선진국을 넘나든 세계적으로 희귀한 경험과 역량을 갖고 이번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빈부 국가를 잇는 가교의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울 회의에서 지난 6월 토론토 G20 정상회의 때 이루지 못한 각종 경제 현안들이 타결될 경우 글로벌 리더십의 새로운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