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무지개

입력 2010-07-21 17:25


무지개는 약속과 열정과 비전의 상징이다. 유년시절 소나기 온 뒤 이 산에 뿌리박고 저 산을 향해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뜬 것을 보고 수많은 상상력 속에 빠졌었다. 나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무지개 떴다’라고 외치며 무지개를 보러 마당에 나와 서성거리거나 산을 향해 달려가던 것을 기억한다.

무지개가 뜨는 것이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영향이나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지개의 출현은 상큼하고 가슴 후련하며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 들고 나서 가끔 무지개에 대하여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유년시절과 같은 막연한 흥분 상태로서가 아니라 무지개를 이루고 있는 컬러의 아름다운 공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일곱 가지 색깔을 가졌음에도 어느 색깔 하나 자기의 힘을 과시하거나 영역을 넓히려 하거나 다른 색깔을 제압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지개는 자기 외의 다른 색깔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기 색깔을 눈부시게 빛내면서 같이 아름답게 둥근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하나가 되자’라고 구호처럼 외칠 때가 많다. 나는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다른 생각을 한다. 이 세상 어느 사물도 사건도 현실도 상태도 모습이나 속성에 있어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꽃과 돌이 하나가 될 수 없으며 나무나 사람이 하나가 되어 나무가 사람이 되든지 사람이 나무가 되는 일은 창조의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무섭고 흉측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에 대한 의견을 모을 때마다 ‘하나가 되자’라고 마치 윽박지르듯 몰아붙인다. 정말 절대적인 한 모습으로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까? 모습과 생각은 다르지만 훌륭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공존하며 목표를 위해서 가장 훌륭한 무지개를 떠올리려 애쓰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총장으로 대학의 일을 집무할 때 안건을 진행하는 회의는 적지 않다. 그때마다 생각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욕구가 다르지만 모두 자기 모습대로 자기 생각대로 회의가 진행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총장은 어느 한 색깔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모두 생각과 주장은 다르지만 자연의 조화로움 같은 거대한 대학 발전의 목표를 위해서는 그 모습 그대로 공존하면서 둥근 무지개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라고 생각해 왔다.

색깔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카리스마라는 리더십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리더들은 다양성을 하나로 통일하여 한 가지 색깔의 무지개를 떠올리고 싶어한다. 쉽고 속도감 있는 결과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컬러가 삭제된다.

글로벌 시대, 다양한 욕구가 존중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 상상력이 이 시대의 중심을 가고 있다. 그 수많은 상상력을 하나로 묶을 필요가 정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창조주가 그걸 기뻐하고 계실까? 무지개의 파괴가 진정 변화일까? 가끔 깊은 생각에 빠진다.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