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가 조작… 유령 판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파헤치니 ‘비리 백화점’
입력 2010-07-20 21:44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경매에 오른 채소의 낙찰가를 조작하고 허위로 판매해 유통질서를 어지럽힌 경매사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대형 유통업자와 결탁해 농산물 가격을 좌지우지했고, 피해는 영세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허위 판매는 영농보상금 등을 노린 것이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중희)는 20일 경매가격을 조작하거나 있지도 않은 농산물을 경매로 거래한 것처럼 속인 혐의(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 위반 등)로 장모(41)씨 등 가락시장 도매법인 소속 경매사 4명을 구속기소하고, 안모(38)씨 등 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장씨 등은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자경매 단말기의 보류 버튼(ESC)을 눌러 낙찰을 보류하고 약속에 따라 수의매매하거나 손가락을 사용하는 수지식 경매를 통해 낙찰가를 조작했다. 이들이 경매조작에 나선 것은 자신들이 소속된 도매시장법인의 영업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대규모 출하업자를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출하업자 유치여부는 낙찰금액의 4%인 위탁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도매시장법인의 실적과 직결된다. 도매시장법인 입장에선 낙찰가를 높이면 그만큼 수수료가 많아지고, 핵심 고객인 출하업자들에게도 이익을 안겨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들은 대규모 출하업자의 농산물 낙찰가를 정상가격에서 최대 30%까지 높여 중도매인에게 팔았다. 농산물을 비싸게 산 중도매인의 손실은 영세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의 낙찰가를 낮추는 식으로 보전해 줬다. 영세 농민은 대규모 출하업자가 얻은 이득만큼 손해를 봤다. 대규모 출하업자는 대부분 전문수집상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유통에만 관여하고 있다.
구속기소된 장씨는 전체 조작 2857건 가운데 1263건을 하향 조정해 7800만원가량을 싸게 낙찰시켰다. 이는 대부분 영세농민이 경매에 올린 농산물이었다. 이모(42)씨도 878건 가운데 536건을 하향 조정해 영세 농민에게 4500만원가량의 손해를 입혔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영농보상을 노린 허위 상장도 처음 적발됐다. 허위 상장은 있지도 않은 물품을 경매에 부쳐 거래하는 방식으로 출하업자, 경매사, 물건을 사는 중도매인이 짜고 벌이는 거짓 거래다. 구속 기소된 경매사 염모(40)씨는 버섯재배업자 이모(49)씨의 의뢰로 버섯을 1018차례 허위로 상장하고 2311만2362원을 챙겼다.
정부는 도매시장법인에서 발부하는 정산서 내역을 영농손실액 보상기준인 실소득으로 인정해 2년간 출하실적을 그대로 보상한다. 이를 노린 재배업자들이 영업실적에 혈안이 된 경매사에게 접근해 상호 이익을 도모한 것이다. 이들은 출하하지 않은 상품을 매매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비리는 경매사, 유통업자, 재배업자 등의 상호 이해관계가 만든 합작품”이라며 “비리의 연쇄 고리를 끊으려면 경매사 공영제 도입, 영농보상제 재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