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통령의 잠

입력 2010-07-20 17:48

미국의 제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1923∼29년 재임)는 잠을 많이 잔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하루 11시간 이상 잤다고 한다. 부통령으로 있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죽음으로 새벽 2시에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뒤 몇 시간을 더 잤다. 국정을 제대로 수행했을 리 만무하다. 대통령 학자인 내이슨 밀러는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에 주저 없이 그의 이름을 올렸다. “무 활동과 침묵으로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일조차 하지 않았다.”(‘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 김형곤 옮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비교적 잠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5년 4월,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백악관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에서 “저는 밤 9시만 되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남자와 결혼한 위기의 주부랍니다”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부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만찬을 하면서 밤 9시가 되자 자리를 뜰 준비를 해 우리 측을 잠시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잠 때문에 정상회담까지 펑크 낸 적이 있다. 1994년 9월, 미국을 방문했다가 귀로에 아일랜드에 들러 앨버트 레이놀즈 총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전용기에서 아예 내리지를 않았다. 국내외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진실을 말하자면 1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느라 깊은 잠에 빠졌으며 수행원들이 깨우지 않았다”고 해명해야 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은 비교적 잠이 적은 편인가 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밤늦도록 일하는 체질이었으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새벽 5시30분쯤이면 일어나 운동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밤잠을 적게 자는 대신 낮에 토막 잠을 잤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저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는 늘 새벽 4시에는 일어나니까 언제든지 보고하라. 보고시간 잡느라 시간 허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여전히 ‘새벽형 인간’임을 확인해 준 셈.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젊은 시절 생긴 습관이란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이 대통령 직무 수행에 꼭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잠꾸러기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잠을 너무 적게 잘 경우 피로가 쌓여 오히려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석비서관들은 또 얼마나 고생일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