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다시 찾은 바리시니코프
입력 2010-07-20 17:55
장대비가 쏟아지는 금요일 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롤랑 프티의 밤’을 보러 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나초 두아토 등 거장들이 펼치는 현대무용은 몇 차례 보았지만, 발레를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간의 설렘과 함께 사전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간 공연이었지만 발레가 준 감동과 여운이 길다.
국립발레단은 세계적 안무가 롤랑 프티가 1940년대에 안무한 세 편의 이야기를 공연했다. 아를르의 여인,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등 모두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카르멘은 프티가 발레리나 아내를 위해 안무한 것인 데, 두아토 역시 그의 부인을 위해 안무했던 걸 생각하면 예술가들의 사랑의 방식은 창조로 이어지고, 시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사랑하였기에 겪게 되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담은 스토리 때문에도 춤은 지극히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다. 세 가지 레퍼토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 콕토가 극본을 쓴 ‘젊은이와 죽음’이었다. ‘젊은이와 죽음’은 화가의 화실에 ‘죽음’이라는 한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자가 나타나는데, 그녀는 화가를 농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다. 콕토는 1940년대 인간 존재의 부조리, 허무감, 자유를 얻기 위한 몸부림을 그린 작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70여 년 전 콕토의 ‘젊은이와 죽음’이 낯설지 않다. 그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앞서 그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다음 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연 DVD를 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낯익음의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 ‘백야’의 주연 배우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때문이었다. ‘젊은이와 죽음’은 영화 ‘백야’에서 바리시니코프가 보여준 춤이었다.
‘백야’에서 바리시니코프를 처음 만났고 그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녹화해서 보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를 정말 발레리노라고 착각하게 하는 멋진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실제로 세계적인 발레리노라는 걸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영화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격정적이었고, 세밀한 표정들은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롤랑 프티의 밤’은 내 안에 갇혀있던 그를 꺼냈다. TV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주었을 때, 그는 내게 ‘젊은이와 죽음’으로 발레를 선물한 스타였다.
방안 한구석에 묻어 두었던 발레에 관한 책을 펼쳤다. 책은 루돌프 누레예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레예프는 1961년에 소련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세계적인 발레리노인데, 그의 망명은 많은 소련 발레 스타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데 도화선이 되었다. 바리시니코프 역시 자유를 얻기 위해 1970년대에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했다.
애매하고 모호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탈이 나는 거라고 은사는 얘기했다. 마치 급하게 먹은 음식처럼. 발레의 여운에 헤매다 보니 바리시니코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예술이 주는 이런 애매모호시간을 또 경험하고 싶어진다.
김연숙(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