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백남준’ 펴낸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씨 “비싼 컬러TV 페인트처럼 써 곤란했었죠”

입력 2010-07-20 21:15

비디오 아트의 거장 고(故)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73)씨는 약간 흥분해 있었다. 그는 남편과의 이야기를 엮은 책 ‘나의 사랑, 백남준’ 출간 기자간담회에 몰린 많은 기자들을 반갑게 맞았다.

2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구보타씨는 “20일은 남편의 생일이다. 이 자리에 남편의 아들, 딸, 손자, 손녀뻘 되는 세대의 사람들이 와서 매우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백남준은 떠났지만 그의 작품과 예술 세계가 후대에도 관심을 받고 기억되는 것에 한껏 고무된 듯했다.

구보타씨는 백남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백남준은 어려서부터 사촌 누나들과 가깝게 지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촌 형들은 백남준을 여자아이 취급하기도 했다. 사촌 누나들과 사이좋게 지내 백남준은 “나중에 딸만 100명 낳고 아들은 안 낳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촌 누나들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게 된 백남준은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를 반대했다. 특히 아버지는 “남자는 비즈니스맨이 돼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백남준이 피아노 치는 것을 질색했다.

구보타씨는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가는 돈을 벌기 힘들다. 하지만 나도 그랬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뉴욕에서 생활했다.

그는 “뉴욕이 예술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살면 예술가로 사는 데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구보타씨는 “남편이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할 때 당시 비싼 컬러TV를 페인트처럼 마음껏 써서 곤란했다”고 추억하기도 했다.

구보타씨는 “백남준은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했다”고 말했다. “나도 예술가였기 때문에 보는 안목이 있었어요. 그가 도쿄에 와서 공연할 때 에너지에 매료됐어요. 그의 가치를 알게 됐지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남편은 고급 문화와 저급한 것까지 망라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민에게 비디오 메시지를 보낸 일을 설명하며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조지 워싱턴 같은 존재”라고 단언했다.

구보타씨는 “이 책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예술가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예술에는 분명히 많은 기회가 존재합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나와 남편의 삶을 보고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