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07-20 17:25
(3) 여호와에 대한 경외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시 31:14)
신앙은 일생에 걸친 하나님을 향한 경외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시 25:12)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우리는 자주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산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살고 또한 자기 성취와 자기 목표에 사로잡혀 산다. 교회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직분, 자신의 사역에 사로잡혀 산다. 목회자들도 대부분 교회 성장에 사로잡혀 산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사로잡혀야 한다. 아기들의 무의식 속에 엄마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저절로 엄마를 찾는 것처럼 우리 존재의 무의식 속에 하나님이 있어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거룩한 본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god)이 되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godly) 살기 위해 부름받았다. 하나님처럼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어느 가정의 어린 아이가 난로 뚜껑에 넘어져 왼쪽 눈이 찢어졌다.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사가 아이를 침대에 눕히더니 의사가 바늘로 머리를 꿰매기 시작했다. 이때 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아파. 저 아저씨 좀 잡아줘. 저 아저씨 좀 붙잡아줘.” 그러나 아빠는 의사를 붙잡지 않았다. 아파하는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아이는 아빠가 자기에게 나쁘다고 생각했을까? 충분히 그렇다. 아빠는 아들에게 나쁜 아버지가 되었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깨달음은 있었다. 하나님도 가끔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신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 중에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하여도’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러하여도’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선하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선물을 빼앗아 갈 때가 있지만 빼앗기 위해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빼앗는다. 하나님이 가져갈 때 우리가 잃지만 얻는 것도 있다. 넘어질 때는 반드시 줍는 것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통해서 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경외를 낳고 경외는 예배를 낳는다. 어떤 예배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 없이는 성경적인 예배가 아니다. 예배는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중요하다.
영성의 고전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의 저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부드러운 감동이 이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분의 어떤 소유물이 아니라 그분 자신만을 목표하고 바라보라.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게 하라. 오직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당신의 지식과 뜻을 좌우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의 일이다.” 주님, 주님을 경외합니다.
이윤재 목사 <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