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디카프리오 화려한 귀환 ‘인셉션’… 무의식 꿈의 세계, 누군가가 개입한다면?
입력 2010-07-20 17:39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는 말 그대로 ‘화려한 귀환’이다. 이들의 신작 ‘인셉션’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긴박감과 인간의 상상력이 가능케 한 창의력 넘치는 영상,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남는 성찰의 여운까지 갖췄다.
주인공 톰 코브는 다른 사람들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일이 직업이다. 현재 지명수배를 당하고 있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계의 거물인 사이토는 코브의 혐의를 벗겨주는 것을 대가로 대기업 후계자 피셔의 꿈 속에 들어갈 것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기업을 자발적으로 해체하려는 마음을 피셔의 무의식에 심어 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코브는 명민한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고용해 꿈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맡긴다. 꿈의 세계와는 관련 없는 일을 하던 아리아드네는 지적 호기심만으로 그와 함께 일하게 되고, 코브의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그의 과거를 만난다. 코브의 과거는 잊혀지지 않은 채 살아 꿈틀대며 그를 좀먹고 있다.
코브와 사이토, 피셔 등 꿈 속 세계에 들어가게 된 인물들은 꿈이 현실처럼 다가오는 두려움과 직면하게 되고, 꿈에서 부딪치는 무의식을 통해 숨기고 싶은 기억과 그로 인한 괴로움으로 가득 찬 자아를 뒤늦게 발견한다. 당초 현실의 세계를 위해 꿈을 이용하려 했던 그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고, 무의식과 실재는 점점 혼돈스럽게 얽혀간다. 타인의 꿈 속에 들어갔지만 어느새 자신의 꿈을 꾸고 있다.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매년 여름이면 대거 몰려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영화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액션 영화가 선보이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에 정신없이 빠지다 보면 남가일몽(南柯一夢)의 상념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가 보여준 것과는 다른 종류의 신선함이다.
감독은 ‘메멘토’와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준 연출력을 한 단계 진화된 솜씨로 유려하게 펼쳐내 보인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림보(영화 속에 나오는 용어로 ‘꿈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무의식’을 의미)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혹시 그곳은 폐허가 아닌가?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질문하는 놀란 감독의 솜씨는 노골적이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블록버스터에 철학적 사유를 세련되게 덧입혀왔던 그의 영화를 기다려온 팬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다른 어떤 종류의 예술로는 표현 불가능한, 영화만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142분의 러닝 타임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하는 관객이라면 마음을 놓아도 된다. ‘추출’, ‘인셉션’, ‘킥’, ‘토템’ 등 복잡한 영화 속 용어 설명이 꽤 오랜 시간 진행되는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보면 90분짜리 영화와 비교해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장면까지 긴장을 놓는 것은 금물이다. 코브와 아리아드네가 도시를 접었다 폈다 하는 장면이라든지, 무중력 상태에서 벌어지는 혈투도 관객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연 아리아드네의 이름에도 주목해 볼 것. 주연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볼 만하다. 12세가. 21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