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주택시장 현장점검-(중) 입주·계약자들의 고통] ‘깡통아파트’ 분양 계약자들 “차라리 준공승인 취소를”
입력 2010-07-19 21:59
18일 저녁 경기도 용인시 공세동 P아파트단지 앞. 일요일 저녁이었지만 단지에서 주민들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단지 내 상가는 세탁소와 태권도학원, 미용실, 작은 슈퍼마켓이 전부였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입주한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710가구 중 470가구 정도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율은 66% 정도였지만 단지 밖에서 바라본 아파트에는 불 꺼진 창이 절반이 넘어보였다.
주택거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팔리지 않은 아파트가 많은 데다 계약은 했지만 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입주를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를 못하는 계약자들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집값 폭락으로 계약을 파기한 이들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건설사들의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용인시 성복동의 H아파트 단지. 입주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은 상황에서 분양 계약자들이 최근 용인시를 상대로 이 아파트 2·3단지에 대한 준공 승인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택시장 침체로 집값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 입주민 정모(42)씨는 “3억원 넘게 대출받아 분양가 5억7000만원에 집을 샀는데 금리인상까지 겹치면서 대출금 상환 부담이 커졌다”면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지금 팔려거든 4억6000만원선에 내놓으라고 하니 계약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입주 예정자들이 중도금 대출이자와 잔금을 내지 않고 아예 입주를 포기하려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인천 영종도 운서지구에 들어선 G아파트는 2007년 분양했지만 328가구 중에 200여 가구가 입주를 포기, 공매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종도 내 Y아파트 단지도 입주를 시작한 지 반년이 훌쩍 넘었지만 입주율은 고작 30%선. 전체 1022가구 가운데 계약자 500여명이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주변 집값이 떨어졌으니 분양가를 10% 깎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를 원하지만 입주를 못하는 계약자들 사이에서는 ‘미입주 대란’ 공포가 엄습해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에 사는 40대 초반의 강모씨는 요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마련한 새 아파트(132㎡)로 입주를 해야 하는데 잔금을 못 치르고 있는 것. 강씨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105㎡)를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싼 급매로 내놓아도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무작정 정부 대책이 나오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거래 실종으로 최대 피해를 입고 있는 부류는 강씨 같은 신규 아파트 실거래 계약자들이 대부분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부동산 거래 급감으로 집을 못 팔아 이사를 하지 못한 가구 수는 대략 4만 가구 정도로 추산됐다.
미입주 대란 등의 상황이 도래하면 건설사들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특히 계약자들을 중심으로 입주 포기 같은 단체행동이 이어질 경우 자금 흐름에 이상이 생기고 건설사들은 또다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용인=박재찬 기자, 유성현 임정혁 대학생 인턴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