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무명 백인 선수·흑인 캐디 7년 동행 ‘아름다운 기적’ 이뤘다… 우스트하이젠, 브리티시오픈 깜짝 우승
입력 2010-07-19 18:52
피부 색깔은 달랐다. 백인과 흑인.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가 여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둘의 조화는 상상할 수 없다. 백인들의 전유물로 불리는 골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둘은 하나로 뭉쳤다. 한명은 선수로, 한명은 캐디로 말이다.
7년째 호흡을 맞춘 그들은 서로를 의지했다. 선수는 캐디에게 자문을 구했고, 캐디는 선수를 믿고 굳건히 백을 멨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하나였다. 흑·백의 장벽은 이들에겐 단지 색깔 그 자체에 불과했다. 난코스, 강한 바닷바람, 장대같은 갈대숲도 이들의 완벽한 호흡 앞에 모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기나긴 72홀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18번홀(파4). 승리를 확정짓는 파 퍼트를 성공시킨 뒤 둘은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흑·백의 ‘아름다운 조화’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골프성지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제139회 브리티시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백인 선수’ 루이스 우스트하이젠(28)과 그의 ‘흑인 캐디’ 잭 라세고(26) 얘기다.
세계랭킹 54위로 무명에 불과한 우스트하이젠은 19일(한국시간) 골프의 산 역사를 간직한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1개, 보기 2개로 1언더파 71타를 쳤다. 2라운드부터 선두에 올라 돌풍을 일으킨 우스트하이젠은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결국 2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를 무려 7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 85만 파운드(약 130만 달러).
2003년 프로로 전향한 뒤 7년 동안 우승이 없었던 우스트하이젠은 지난 3월 유럽프로골프투어 안달루시아오픈에서 처음 우승한 뒤 4개월 만에 생애 첫 메이저대회까지 제패하는 감격을 누렸다. 우승으로 세계랭킹이 15위까지 수직상승한 우스트하이젠은 2002년 자신의 우상인 어니 엘스(41)가 차지했던 대회 우승컵인 ‘클라레저그(은제 술주전자)’를 8년 만에 남아공으로 다시 가져온 선수로 기록됐다.
최종 라운드가 열린 18일(현지시간)은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린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92번째 생일이어서 흑·백 조화로 만들어낸 우스트하이젠의 이날 우승은 더욱 뜻이 깊었다. 우스트하이젠은 경기 후 “18번홀 그린으로 걸어오면서 만델라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 생일을 맞은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캐디 라세고도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오늘은 남아공 최고의 날”이라며 감격해 했다.
앞니 사이가 벌어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슈렉’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루이스 우스트하이젠(Louis Oosthuizen)이 우승하자 외신들은 읽기 힘든 그의 이름을 발음(WUHST-hy-zen)까지 써가며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김준동 기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