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사랑해' 저자 이지선씨 인터뷰 "30일은 제 10번째 생일"

입력 2010-07-19 15:26


“하나님께서 다시 생명을 주신 날인 걸요. 10번째 생일인 만큼 근사한 데 가서 외식하자고 가족들을 조르는 중이에요.”

2000년 7월 30일. 추돌사고 후 발생한 차량 화재는 예뻤던 이지선(32)씨의 얼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흉터를 남겼다. 유치원 교사의 꿈을 안고 사회 첫발을 내디디려던 대학 4학년의 부풀었던 마음은 무참히 찢기고 말았다. 누가 봐도 악몽 같았던 그날, 하지만 그녀에겐 5월 24일 생일보다 더 소중한 진짜 생일날이 됐다.

지선 씨는 아직까지 범인과 대면하지 못했다. 아니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용서할, 아니 감사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나타나주질 않았다. 용서는 가당치 않다고도 했다. “용서라뇨? 저는 그런 말을 쓸 자격도 없는 걸요.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을 배려하시고 용서하신 걸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인 걸요.”

최근 출간된 ‘지선아, 사랑해’(문학동네) 개정판엔 이처럼 그녀의 농도 짙은 신앙고백이 곳곳에 묻어난다. 7년 전 출간돼 큰 화제를 모았던 책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너무 흥분된 마음으로 쓴 거라 촌스럽기도 하고, 그때는 차마 못했지만 이제야 할 수 있는 얘기들도 많았거든요.”

이 기간 동안 달라진 게 몇 개 있다. 우선 자신 같은 장애인들을 돕겠다며 2004년 시작한 재활상담학 공부는 노인복지학으로 바뀌었다.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서 만난 한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 개인 상담보다는 정책이 급선무라는 거시적 안목, 보건복지부에서의 인턴 경험 등이 두루 작용했다. 지선 씨는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시키신 게 없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그녀는 UCLA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오는 9월 출국한다. 수년 후 돌아와 한국의 복지정책 담당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을 살짝 물어봤다. 예전엔 ‘귀여운 얼굴’이 먼저였지만 지금은 ‘따뜻한 마음’이 먼저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서로 말이 통하는 것도 새로 생긴 기도목록이다. 맨 나중이 외모다. 기준도 많이 낮아졌다. ‘귀여워야 한다’가 아니라 ‘귀여우면 좋을 것 같다’다. 남보다 몇 갑절의 중압감으로 20대를 건넌 그녀에게서 내면의 깊은 성숙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11월과 올 3월, 지선 씨는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뉴욕과 서울의 마라톤대회를 각각 완주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마라톤은 불가능, 아니 죽음과도 같았다. 여러 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하느라 그녀의 다리는 성한 곳이 없다. 피부의 55%나 화상을 입어 체온 조절도 안된다. 땀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던 데는 주위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뉴욕마라톤대회 때는 길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위해 한 한국인이 “이지선, 파이팅”이란 피켓을 직접 제작해 흔들어줬다. 낯선 이국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모습에 힘이 솟았다. 그렇게 해서 7시간 20분 만에 그녀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올 3월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때는 친오빠가 함께 달려줬다. 진통제를 먹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뉴욕마라톤대회 때보다 40분이나 단축했다고 그녀는 자랑스러워했다.

어머니 심정(58)씨는 지선 씨가 마라톤을 완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딸의 몸 상태로는 자칫 목숨도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선이가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쟤가 내 딸 지선이 맞나?’ 의심할 정도였어요. 소소한 일에 아직 엄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지선이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지선이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10년은 우리 가족에게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감사의 시간이었어요.”

두 번의 마라톤 완주 경험을 지선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마라톤을 뛰다보면 반드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구요. ‘이 짓을 왜 할까’ 하는 회의도 들고, 죽을 것만 같은 위기도 오구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으니까 기적이 오더라구요. 내 형편으로는 10km도 힘든데 포기하지 않고 뛰다보니 기적 같기만 한 42.195km도 극복이 되더라구요. 제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파이널 지점이 있을 텐데,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하나님과 함께 걷고, 뛰고 있었다. 그 하나님이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셨다. 그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지선 씨의 삶과 고백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힘찬 응원가가 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