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옥선희]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
입력 2010-07-18 17:27
나는 두 개의 시민단체에 적을 두고 있다. 청소년에게 좋은 영상물을 보여주기 위한 운동 차원에서 비디오 시절부터 참여한 서울 YMCA의 영상위원으로 자문을 하고 있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미디어 전반을 모니터링하고 비평하고 교육하기 위해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www.mediayolsa.or.kr) 창립 멤버로 10년 째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 즉 정치참여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거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순수하게 운동에 매진하는 단체에 적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억울한 오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의 경우 미디어 환경과 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들 1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 사무실을 얻었고, 자신이 번 돈의 20∼50%를 기부하며 꾸려왔다. 기부와 봉사에도 불구하고 비 새는 사무실 월세 내는 게 벅차서 최근 회원의 집 지하실로 이사했다. 이런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웃음이 넘쳐나는 것은 13년을 알고 지낸 회원들의 성실함과 우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7월에 128차 보고서를 냈을 만큼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은 미디어 단체 중 가장 성실하게 TV와 미디어 전반을 모니터하는 단체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모니터는 감시와 비평과 교육의 기본이지만, 시간과 품이 많이 들고 이를 제대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없어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처럼 꼼꼼하게 꾸준히 모니터하는 단체가 드물다. 나는 생색내기보다 기본을 지키는 데 충실한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몹시 자랑스럽다.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맡아 성실하게 수행한 후, 일에 따른 적정의 ‘사업비’를 받아본 적은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순수한 시민단체들을 생각해서라도, ‘보조금’이라는 부적절한 단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작고 이름 없지만 반듯한 단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몇몇 명망가 때문에 시민단체를 좌니 우니 입맛대로 평가하며 줄 세우는 보도도 불쾌하다.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 회원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늙어가고 싶어서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산다. 우리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고, 해야만 할 일을 즐겁게 하자는 초심을 기억하기에 기꺼이 돈과 시간과 재능을 나누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데도 우울증으로 병원 다니는 이들을 보게 된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에 나와서 TV 드라마, 영화, 책, 신문 보고 수다 떨자고 권유한다. 약의 힘으로 호르몬을 다스리는 것보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글을 쓰고 여행 다니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좋고 또 생산적이지 않겠는가.
올 가을에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은 10주년 기념식을 조금 폼 나게 치르기로 했다.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한 잔치가 될 것이다.
옥선희(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