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CEO ‘낙하산 인사’ 멈출까
입력 2010-07-16 21:35
“권력의 진공 상태가 아닌가 싶다.”
16일 서울보증보험 사장 2차 공모에 무려 16명이나 응모한 것으로 드러나자 금융권 관계자는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달 1차 공모 때와 비교하면 2차 공모 결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1차 공모 때 응모한 사람은 총 5명. 2차 응모자수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중 최종후보로 오른 이는 정연길 서울보증보험 감사와 김경호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였다.
말이 양자 경쟁이었을 뿐 금융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교출신인 정 감사가 사실상 낙점을 받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부지분이 99.8%에 이르는 서울보증보험에서 공모는 요식절차라는 지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힘쏠림이 뚜렷해지자 방영민 현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1차 공모에 응모한 뒤 곧바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의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으로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가 계속 중용되는 회전문 인사에 비판이 커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더욱이 정치권의 선진국민연대와 이른바 ‘영포라인’의 금융 질서 농단 의혹까지 불거지자 정권에서도 감히 ‘낙하산’ 투입을 꿈꾸지 못할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재공모가 되자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금융인들이 대거 소신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번 재공모에 응모한 한 관계자는 “이달 말 재·보궐 선거도 있는데다 청와대도 잡음 없이 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이자 상당수 인사가 예상외의 결과를 기대하며 응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보증보험 경우는 수장 교체를 앞둔 다른 금융권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부를 전망이다. 현재 보험개발원에서 원장 응모를 진행 중에 있으며 KB국민은행장과 손해보험협회장도 조만간 선임된다. 서울보증보험 학습효과로 인해 이들 금융기관장에도 권력의 힘을 업은 외부인사의 진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KB국민은행장의 경우 어윤대 회장이 사내인사 발탁으로 선을 긋고 직원들의 여론조사까지 벌이는 중이다.
하지만 서울보증보험식 소신 지원이 향후 대세로 자리 잡을지에 대해서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권력이 잠시 관망하고 있을 뿐 언제든지 공공 금융기관 인사에 개입하려는 속성을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보증보험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13일 밤 16명의 응모자 중 정채웅 보험개발원장, 방영민 현 서울보증보험 사장, 정우동 전 서울보증보험 부사장, 이기영 전 LIG손해보험 사장 등 9명으로 사장후보를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