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곡조를 못이기는 흘러간 옛사랑의 노래

입력 2010-07-16 18:05


조용호 첫 장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어제는 부드러운 진실이 오늘은 잔혹한 거짓말로 변했네/비옥했던 땅조차 모래땅으로 변하네/난 긴 밤을 지새며 새벽의 여명을 기다리네/이 밤은 왜 이다지도 긴지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아타우알파 유팡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소설가 조용호(49·사진)는 대학 시절에 민요패 동아리의 회원이었다. 한때는 민요패에서 배운 ‘상엿소리’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그는 80년대 초반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노래로 달래곤 했던 것이다. 그때 민요연구회 회장은 신경림 시인이었다.

그러니까 조용호는 소설가 이전에 가객이었는데 노래를 이기는 소설이 없듯, 그는 가객으로서 가슴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좀체 꺼내들지 않았다. 그러다 6년 전 겨울 박경리 선생이 운영하던 원주 토지문화관에 방을 얻어 집필을 시작했다. 생업 때문에 글은 자주 끊겼다. 어느 해엔 만해문학관에 입주해 소설의 몸체를 만들었고 또 어느 해엔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 몸을 의탁했다.

그가 마침내 이야기를 품고 사는 ‘즐거운 고통’에서 풀려났다. 첫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는 노래와 이야기와 사랑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소설은 그것들이 당초 분리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스토리 라인은 대학 민요패 출신인 가객 연우가 1인칭 화자 ‘나’에게 비망록을 남긴 채 사라지고, ‘나’는 연우의 아내 승미와 함께 연우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밀어가는 문장들은 노래가 지니는 정서적인 힘에 의탁하고 있다.

행방불명된 연우야말로 옛 노래를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나’는 연우의 비망록을 통해 집을 버리고 떠돌았던 연우 부친의 삶이 연우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민요패 후배였던 선화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데 그녀는 자신을 옭아맨 혈연의 악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 칠레로 도망친다. 연우가 승미와 선화 중 누군가에게 가야 하는 순간 소설은 묻는다.

모든 것이 영원한 에덴에서의 삶과, 쾌락과 고통과 죽음이 공존하는 지옥에서의 삶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얼핏 기구한 소리꾼의 운명을 따라가는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가 연상되기도 한다.

소설 군데군데에 보석처럼 빛나는 17편의 서정적인 노랫말은 선율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게 한다. 노래가 될 수 없는 소설에 노래의 몸을 입혔으되 그 책망을 물을 수 없는 지극한 작품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