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때도 목화 있었다… 문익점보다 800년 앞선 면직물 발견
입력 2010-07-15 22:35
고려 말 문익점(1329∼1398)이 원나라에서 처음 목화씨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시점보다 800년이나 앞서 제작된 백제시대 면직물(사진)이 발견됐다.
‘백제 중흥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유물을 전시 중인 국립부여박물관은 최근 전시 유물을 정리·분석하는 과정에서 1999년 수습한 직물(폭 2㎝, 길이 12㎝)이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학교 심연옥·정용재 교수 팀과 함께 첨단 기자재인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종단면을 관찰한 결과, 이 직물이 식물성 셀룰로스 섬유로 짠 면으로 목화에서 실을 뽑아 직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능산리 절터는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 때 제작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 등이 함께 출토된 곳으로, 이 직물의 제작 시기를 감안하면 국내 가장 오래된 면직물이라고 박물관은 강조했다.
이번에 확인된 면직물은 고대의 일반적인 직물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씨실)를 사용해 독특한 직조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다고 박물관은 말했다. 이 면직물이 백제에서 재배한 목화를 재료로 제작됐다면 1363년 문익점을 통해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 면직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심연옥(전통직물연구) 교수는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한원(翰苑)에는 ‘고구려에서 면직물의 일종인 백첩포(白疊布)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삼국시대 목화가 소량 재배되고 있었다는 문헌을 실물로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그러나 삼국시대 목화는 중앙아시아 품종으로 토양과 기후 때문에 잘 재배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문익점의 중국 목화씨 반입은 이후 한반도 전역에 걸쳐 목화 재배를 본격화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