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멍들고 자본에 치이고 33년 역사 톰보이마저 ‘부도’… 토종 의류기업 줄줄이 쓰러진다

입력 2010-07-15 18:33


33년 된 국산 의류브랜드 톰보이가 부도 처리됐다. 지난 4월 국내 브랜드 쌈지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상장 폐지된 데 이어 오랫동안 건실했던 국내 의류업체가 또 무너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의류 브랜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에서 대기업을 따라잡지 못하고 트렌드와 가격 경쟁에서 외국계 업체에 밀리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산 의류 브랜드 톰보이 33년 만에 부도=톰보이는 16억8878만원 규모의 전자어음 88건을 입금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고 15일 공시했다. 톰보이는 지난 13일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에 지급 제시된 전자어음을 예금 부족으로 기한까지 입금하지 못했다. 1977년 9월 설립해 33년간 명맥을 이어온 장수기업이 결국 문을 닫게 됐다.

백화점 등에 입점한 톰보이, 톰보이진, 코모도 등의 톰보이 브랜드는 부도설이 떠돌던 지난 13일부터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이틀 전부터 톰보이 브랜드 매장에 안내 공문을 붙여놓고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며 “채권단 판단에 따라 매장을 철수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품들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톰보이는 2006년 창업주인 최형로 회장이 갑작스레 숨진 뒤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2006년 97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5억원으로 떨어졌고, 당기순이익은 2008년 적자로 돌아섰다.

◇대기업에 눌리고 외국기업에 치이고…고전하는 중소 의류업체들=국내 중소 의류업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경제난에도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 패션 등 대기업은 성장가도를 달리는 반면 중소 브랜드는 매출 감소를 겪으며 속속 대기업에 편입되고 있다. 여성복 업체 데코, EnC, 구호 등 중견 업체들은 이미 2000년대 중반 이랜드와 제일모직 등에 인수됐다.

해외의 SPA 브랜드의 국내 진출도 국산 의류업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자라, 유니클로, 망고, 포에버21 등 SPA업체는 다양한 디자인의 중저가 의류를 선보이면서 국내 패스트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SPA는 단일 업체가 제조부터 유통까지 전담하는 브랜드를 말한다. 해외의 SPA 업체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과 마케팅 측면에서 견고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중소 의류업체들은 대기업의 브랜드 파워를 따라잡지 못하고, SPA 업체와의 가격경쟁에서도 밀리는 실정이다.

◇경영 혁신·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 시급=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의류업체가 살아남으려면 경영 혁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한 기업이라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면 패션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을 인식하고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해외 명품 디자인이나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방식을 막연하게 좇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브랜드만의 개성을 살린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 브랜드가 오랜 경험을 통해 구축한 시스템을 배우고 국내 현실에 맞게 경영 혁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