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경계인 쓰카 고헤이

입력 2010-07-15 17:44


며칠 전 재일동포 작가이자 연출가 ‘쓰카 고헤이(본명 김봉웅)’의 부음은 각별했다. 미리 써 놓았다는 짧은 유서의 말미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쓰시마(대한)해협에 유골을 뿌려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니, 그의 신산한 일생이, 그리움의 실체가 더욱 저릿하게 다가왔다.

일본 연극이 ‘쓰카 이전’과 ‘쓰카 이후’로 나뉠 만큼 지대했던 그의 영향력이나 나오키상, 요미우리상 수상 이력 등의 세속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는 성공한 인물이었다. 7월 14일자 아사히신문이 유서 깊은 1면 칼럼 덴세이진고(天聲人語)를 그의 ‘너무 이른 죽음’에 할애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일본에서의 입지는 대단하다.

칼럼에 따르면, 그가 재일한국인이었다는 것은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쓰카 고헤이’라는 히라가나의 필명을 쓰는 그는,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본명으로 활동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편지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반면에, ‘전공투세대’로서 나라(일본)의 정세가 이렇게 어지러운 판에 연극이나 하고 있느냐는 일본 동료들의 비판에는 ‘집주인 싸움에 세입자가 참견하는 꼴’이라 학생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그였다.

‘언젠가는 공평’하기를 염원한다는 뜻의 필명, ‘쓰카 고헤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연극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던 그에게 ‘어느 쪽’은 중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 어느 쪽도 아닌 경계인의 삶은 ‘선의에도 독이 내재하고, 악의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은 핀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작가로서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조국’은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썼다는 책,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은 그 조국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 읽힌다. 그러나 그 조국은 우리 세대가 아침마다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해야 했던 그것은 아닌 듯싶다.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딸에게, 조국이란 ‘너의 아름다움이며 엄마의 한결같은 상냥함 같은 것’이라고,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그 뜨거움 속에, 두 사람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눈길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조국’은 역사적 지리적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연극에서 막을 내리는 일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고 그는 평소에 말했다는데, 그의 인생은 이 복잡한 시대의 관객을 납득시키는 엔딩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삶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밤샘도 추도식도 하지 말고 묘도 비석도 만들지 말라는 그의 당부는, 과분한 사랑에 감사했다는 그의 마지막 인사는 너무 일찍 끝나버린 아름다운 연극처럼 아쉽고 안타깝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인에 대한 대접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것은 한류나 눈부신 경제성장이 가져다준 덤이 아니라, 쓰카 고헤이와 같은 경계인의 삶이 피와 뼈로 이룬 아주 느린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국경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그의 명복을 빈다.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