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윤호] 마무리 투수진이 필요하다
입력 2010-07-15 21:20
“집권 후반기는 새로운 일 벌이기보다 국정 과제를 매듭짓는 게 더 중요하다”
청와대 개편과 한나라당 새 지도부 출범에 따라 곧이어 개각이 단행되면 여권이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집권 후반기를 맞게 된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이후 정운찬 총리의 교체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져 왔지만 최근의 기류는 교체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분위기다.
‘박근혜 총리’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안상수 새 대표가 수락 연설에서 공개적으로 “박 전 대표를 만나 뜻을 물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몇 차례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해온 박 전 대표가 안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현시점에서 ‘박근혜 총리’ 카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박 전 대표의 자질이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정권 초기에 ‘박근혜 총리’ 카드가 사용됐다면 여권 내에서 지금과 같은 갈등과 분열 양상이 빚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최근 권력투쟁 양상으로까지 확대된 특정 인맥의 국정 농단 시비도 친이 세력의 독주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카드’가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을 봉합하고 분열을 수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대표의 박근혜 총리론은 그가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및 보수대통합 구도와 이어져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하려면 이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끌어안아야 하고, 그래야만 보수대통합을 위한 정계개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권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새로 임명되는 총리가 개헌과 정계개편 논의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집권 후반기의 정치인 총리는 차기 대권 구도와 얽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국정을 챙기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안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한 정치인들의 입각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안 대표는 “집권 중·후반기인 만큼 정무적 판단을 잘하는 정치인이 총리나 장관으로 입각하는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은 당이나 청와대에서 할 일이다. 내각은 당과 청와대 간에 조율된 정책을 차질 없이 집행하면 된다. 청와대에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와 백용호 정책실장 내정자 등 ‘MB의 남자’로 불리는 핵심 측근들이 포진하고, 한나라당 지도부 역시 친이계가 장악해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 정치인들까지 대거 입각하면 정치 과잉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역대 대통령들의 용인술을 비교한 저서 ‘참모론’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연고적 능력주의’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과거 국회의원 시절이나 경선 때 믿었던 부하 직원 또는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배신자 콤플렉스’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분석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 대통령은 자신과 함께 일한 경험 등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듯하다. ‘S라인 인사’나 ‘회전문 인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집권 초기에는 이 대통령의 심중을 꿰뚫는 측근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국정 청사진을 만드는 데 자신의 눈빛만 보고도 알아서 움직이는 참모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러나 집권 후반기는 다르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국정 과제를 매듭짓는 게 더 중요하다.
최근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과욕이나 과잉 충성으로 빚어진 권력 농단 논란은 선발투수가 삼진 아웃을 잡으려다 홈런 맞은 격이다. 무산된 세종시 수정안, 뒤얽힌 남북관계, 혼돈에 빠진 교육개혁 등 국정 현안 가운데 제대로 매듭지어진 게 별로 없다.
내각에 정무적 판단이 아니라 실무 능력과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때다. 임기 전반기와 달리 후반기 2년 반은 긴 시간이 아니다. 여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권력개편에 ‘올인’하면 국정 과제에 매달릴 시간은 더 짧아진다. 이제 마무리 투수진에게 맡겨 조심스럽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패전 처리 투수를 다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김윤호 논설위원 kimy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