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조전혁 의원의 돼지저금통

입력 2010-07-15 17:48

저금통은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저축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가 선물로 주곤 했다. 요즘 어른들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심심풀이로 동전을 채우기도 하고, 외국여행에서 쓰고 남은 동전을 모으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저금통이 주로 돼지 모양을 띠는 것은 돼지가 돈과 복(福)을 상징하는 동물인 데서 비롯됐다. 외국에서도 저금통을 사용하지만 단순한 원통형이 많다.

돼지저금통은 동전을 넣기는 쉽지만 빼려면 아예 찢거나 깨트려야 한다. 어릴 때 종이를 동전 투입구에 밀어 넣어 누나 몰래 빼내기도 했지만 제법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돼지저금통은 ‘저축’의 본 뜻에다 ‘희망’ 의미가 더해져 대체로 긍정적 이미지를 갖지만 한편으로는 ‘궁색’의 부정적 이미지도 내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기간 중 노사모가 ‘희망돼지 저금통’을 나눠주고 정치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는데, ‘노무현=희망’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정치적 쇼의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지난 13일 돼지저금통 3개와 현금, 수표를 들고 전교조 사무실을 찾았다. 전교조 명단공개와 관련해 법원이 내린 강제이행금을 내겠다며 가지고 간 돼지저금통을 뜯고 부쉈다. 전교조가 계좌를 압류하는 바람에 직접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역시 돼지저금통 이미지를 활용한 정치적 쇼로 보인다.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고, 전교조의 계좌 압류를 비난하고, 자신에겐 돈이 없음을 알리는 삼중 효과를 노린 것 같다.

법원이 하루 3000만원의 강제이행금 판결을 내렸을 때 조 의원은 “판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느냐”며 비난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판결은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명단을 내리라는 것이었고, 금액에 대한 비난은 판결 불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이날 1억5000만원 가운데 481만여원을 내고 가면서 돈이 마련되는 대로 또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교조가 이쯤에서 압류를 풀고 징수를 중단했으면 좋겠다. ‘전교조 저격수’로 불리는 조 의원에게 감정이 많겠지만 1억5000만원은 조 의원 형편에 너무 큰 돈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마누라의 살 권리도 중요하다”며 명단을 빨리 내리라고 종용했겠는가. 정치는 정치로 푸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징수를 포기함으로써 전교조가 얻게 될 관용 이미지 등 긍정적 효과가 1억5000만원이라는 액수나 앙갚음의 쾌감보다 훨씬 커 보인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