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섬도 그를 만나면 브랜드가 된다

입력 2010-07-15 18:00


농부에게 농촌 가르치는 전남대 강신겸 교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1년에 12번 모이는데 수업료만 120만원이다. 오가는 교통비에 식대까지 따지면 기백만원이 든다. 정식 인가대학도 아니다. 그래도 입학 희망자는 매년 줄을 선다. 지난해 5기까지 졸업생이 1000명인데 80%가 농민이다. “돈이 아깝지 않은 학교” “정말 잘 들었다고 무릎 치게 만드는 수업”이라며 학생들은 환호했다.

2004년 강신겸(42)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가 주머니 털어 한국농촌관광대학(농촌관광대)을 세울 때만 해도 이런 호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강 교수는 농촌과 관광이 들어간 온갖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애물단지였던 ‘바람’과 ‘눈’을 관광자원으로 만들어낸 의야지마을(강원도 평창군), 유기농 체험으로 차별화한 토고미마을(강원 화천군),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증도(전남 신안군)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1년이면 50∼60곳 농촌마을을 돌며 강연하고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강 교수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20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한양대에서 관광학 박사를 마친 뒤에는 12년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농촌관광을 연구했다. 2007년부터 연고 없는 광주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지난달에는 신임 광주시장 인수위원회의 유일한 영남인사로 활약했다.

영남에서 서울을 찍고 호남으로 간 그의 행보는 한국 엘리트에게 흔치 않은 하이브리드의 흔적이다. 중앙과 지방, 호남과 영남이 교차하는 곳. 중앙의 방식과 지방의 정서, 영남의 DNA와 호남의 시스템, 공무원의 생리와 농민의 삶이 얽히는 곳. 강 교수는 그런 지점에 서 있는 듯했다.

정부 지원이 농촌을 망하게 한다

“저 빨강 지붕이 오리집이구마잉∼. 저것들을 풀어서 해충을 잡아먹는다 말이제?”

“글타는구만. 오리 요것들을 논에 몰아넣었다가 몰아냈다가 그럴라믄 헷갈리겄어.”

“우렁이는 잡초를 먹제. 우리 마을서는 우렁이농법을 일부 한다고. 저거 저 분홍 게 알이라고.”

1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홍성환경농업교육관 앞에서 관광버스가 검게 그을린 50∼60대 30여명을 토해냈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서 유기농 공부하러 온 농부들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홍성면의 오리농법 및 우렁이농법 논과 도정공장, 미생물공장, 떡공장 등을 돌아봤다. 인솔자는 강 교수였다.

주암댐과 천년고찰 송광사, 노년의 주민 1900여명. 송광면은 이 세 가지로 어떤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강 교수와 마을주민은 벌써 몇 개월째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고 있다. 홍동면 시찰도 그중 하나였다. 황춘하 송광면 주민자치위원장은 “강 교수는 보고서 하나 내고 떠날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몇 년 걸리더라도 마을이 살아갈 방법을 찾자고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농촌관광대와 송광면의 관계를 보면 강 교수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황 위원장을 포함해 송광면 주민 12명은 강 교수가 설립한 농촌관광대 재학생이다. 교육받은 농민들은 다시 강 교수와 손잡고 마을을 바꾼다.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까지. 그게 강신겸식이다.

농촌관광대는 철저하게 수강료로 운영된다. 캠퍼스는 강원 평창과 충북 청원 두 곳. 한 달에 한 번 건물을 빌려 쓰는 정도일 뿐 간판도 없다. 정부 지원도 기업 후원도 사절이다. “지원 받아서 하는 일은 다 망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농촌을 살리는 것 역시 정부 지원으로는 해낼 수 없다.

“농민들에게 ‘지원해 달라, 돈 달라 이런 말 그만하라’고 해요. 지원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고민해야 해요. 자기 이야기와 스타일을 만들면 그게 마을의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지원은 그 다음이에요.”

농촌개발에서 경영으로

강 교수는 농촌개발론을 핏대 세워 비판한다. 개발이란 단어에 농촌에 대한 편견이 응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대한민국 농촌은 발전하거나 성장하지 않았다. 개발됐다.

“산(山)은 발전할까요, 개발될까요? 산은 개발됩니다. 발전하지 않아요. 발전과 개발은 주체냐 대상이냐의 차이예요. 그간 농촌은 산 같은 존재였어요. 개발과 근대화의 대상이었죠. 누구도 농촌이, 농민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주체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정부와 도시는 농촌에 이렇게 물었다. ‘너 뭐 필요하니?’ 농산물집하장과 창고를 지어주고, 가공공장을 세웠다. 수십억원을 들여 도로를 닦고 마을회관과 농촌체험마을을 꾸렸다. 물론 하드웨어는 기본이다. 정부의 물적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강 교수가 송광면 주민을 끌고 홍동면을 찾은 것도, 농촌관광대를 고집하는 것도 개발이 아닌 발전을 이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다.

“창고를 짓는 게 목표가 될 수 없어요. 창고를 원만히 운영할 역량을 갖춘 최고경영자와 마케터를 키워야 하죠. 그러자면 시작도 끝도 사람이에요.”

강 교수는 “농촌 활성화는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고 믿는다. 유기농을 해도 마을 전체가 나서야 제값을 받는다. 소비자도 공유하면 줄지 않고 늘어난다. 생산, 가공, 체험은 하나로 묶어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개인보다 마을이, 마을보다 면 단위 프로젝트가 효과적이다. 15개 마을이 모인 송광면은 강 교수에게 면 단위 사업의 첫 시도다.

“송광면은 두릅, 취나물 같은 산채에 버섯, 밤이 유명해요. ‘친정엄마’라는 주민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소비자를 면 단위에서 하나로 묶어보려고요. 고향 어머니가 시집간 딸에게 바리바리 싸서 보내듯 농산물을 패키지로 묶어 도시 주부들에게 공급하는 거예요.”

요즘 관심은 농촌에서 섬으로 확대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섬 여행 학교’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지정된 섬에 모여 그 섬에 가장 적합한 여행을 고민한다. 섬 여행의 모토는 ‘섬을 걷자, 섬에서 배우자, 섬에서 베풀자’이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관광객들을 상정하고 시설투자부터 하는 게 지금까지 개발방식이었어요. 이번엔 거꾸로 가보자는 겁니다. 섬 여행 학교 학생들이 소비자가 돼서 제안을 하는 겁니다. ‘이불이 깨끗하면 좋겠다’든지 ‘○○네 집에서 이불을 모아 빨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거죠. 손님을 데리고 가서 섬을 바꾸는 겁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를 그만두고 2007년 이직을 결심할 때 고향에 대한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영남 쪽 대학에서도 제의가 왔다. 흔들렸지만 최종 선택은 광주였다. “잘 아는 곳에 가면 더 잘할 수도 있을까. 전 반대라고 생각했어요. 모르는 곳에서 더 잘 설득하고 더 많이 바꿀 수 있어요.”

광주는 안동 출신의 강 교수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서울 살 때는 얼굴도 모르던 아파트 이웃과 친해졌다. 외로울 때 밥 한 끼 나눌 이웃을 꼽아보니 벌써 다섯 집이 넘는다. 그는 외지인을 품는 관용에서 광주의 경쟁력을 봤다. “창조도시를 만들려면 개방성이 중요합니다. 저 같은 타고장 사람을 포용했다는 사실이 광주의 관용정신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광주에서 가장 바쁜 영남인사가 됐다. 지난달 중순 강운태 광주시장 인수위원회 첫 회의 때였다. 인수위원들의 소개에는 고향 호남론이 빠지지 않았다. 문화경제팀장을 맡은 강 교수가 일어섰다. “저는 길거리 캐스팅입니다.”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인수위 유일의 영남 출신이었다.

중앙을 알고 지방을 이해하는 전문가, 영남과 호남을 두루 아는 사람, 공무원과 농민을 이어줄 매개. 3년의 실험에서 그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홍성=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