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사랑 그리고 청춘의 빛
입력 2010-07-15 17:42
어부 마르코의 꿈·콘스탄티노플의 뱃사공/시오노 나나미/한길사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1970년대 말에 쓴 두 편의 짧은 사랑 이야기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커가는, 한바탕 꿈 같은 성장기를 통해 지중해 도시의 낭만적 분위기와 시대적 사회상까지 담고 있다.
‘어부 마르코의 꿈’은 사육제 날 밤 벌어지는 가난한 열여섯 살 어부 소년 마르코와 아름다운 귀부인의 사랑 이야기다. 마르코는 굴을 배달하는 심부름으로 당대의 부호이자 귀족인 단돌로가의 저택을 찾는다. 그곳에서 마르코는 부인의 손에 이끌려 무역 일로 알렉산드리아에 간 주인을 대신해 신분을 속인 채 가장무도회를 즐긴다. 가면을 쓴 마르코는 더 이상 앳된 소년이 아니었다. “그날 밤, 누구보다 자유로워진 사람은 바로 마르코였습니다. 마르코는 자신의 싱그러운 젊음을 주위에 자랑하듯 대범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55쪽)
그 에너지는 가면이 아니라 바위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굴을 어르고 달래며 떼어내는 순간의 쾌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마르코는 점차 알게 된다. 바다의 삶밖에 모르던 하찮은 소년과 귀족 부인 간의 사랑이 가능한 건 청춘의 빛으로 일렁이는 베네치아의 잔물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콘스탄티노플의 뱃사공’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과 금각만을 오가는 거룻배의 뱃사공 테오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엄마를 잃고 할아버지와 함께 갈라타 지구에 사는 소녀 록산나는 닷새에 한 번씩 콘스탄티노플의 아버지를 만나러 테오의 배에 탄다. 닷새마다 마주치게 된 소년과 소녀는 친구가 되고 소년은 소녀가 배에 타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록산나의 자취는 사라지고 소식도 끊긴다. 어느 날 테오 앞에 최고 권력자 술탄의 여인의 가마가 나타나고 록산나는 테오에게 뱃삯 대신 주던 하얀 꽃다발을 떨어뜨리고 떠난다. 테오 앞에 떨어진 하얀 나리꽃다발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상징한다.
두 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랑은 일종의 물결이며 그것을 실어나르는 배로서의 청춘의 빛은 아니었을까. 각각 일본의 유명 화가인 미즈타 히데오와 츠카사 오사무가 그린 삽화가 곁들여졌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