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영화로 말하다

입력 2010-07-15 17:36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창비

영화 ‘실미도’나 ‘300’을 보면서 불편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화면 군데군데 혹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서 보이는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오리엔탈리즘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꼼꼼히 살펴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뇌성마비 장애인의 인권을 다룬 영화 ‘오아시스’는 어떤가. 뚱뚱한 30대 여자도 당당히 연애할 수 있다고 말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며 당신은 불편해본 적 있는가. 자신이 주는 점수를 받아야 하는 교생에게 ‘같이 자자’고 말하는 교사(‘연애의 목적’), 강간미수로 시작되는 사랑(‘오아시스’), 암에 걸린 사실을 숨겼던 여자친구의 뺨을 때린 남자(‘내 이름은 김삼순’)를 보면서 당신이 느낀 불쾌감은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아직 일반적인 게 아니다.

분명히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남들은 무심하기만 해 ‘나만 유독 예민한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불편해도 괜찮아-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를 펼쳐보시기를. 당신과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어느 만큼인지 돌아보고, 인권에 둔감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경북대 로스쿨 김두식 교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81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했다. 그는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병을 치유했다고 전세계가 찬사를 보낸 대처리즘의 이면을 힘들이지 않고 보여줬다. 글로벌 군산복합 기업의 폭력성을 신랄히 비난한 ‘아바타’는 한국에서만 1200만명이 봤다. 저자는 묻는다. 왜 우리는 대중영화가 보여주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에 무지한가? 왜 한국에선 빌리 엘리어트처럼 세련된 노동자 영화가 나오지 않았는가? 검열과 삭제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화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영화 번역자들은 왜 남성만 여성에게 반말을 하도록 하는가. 저자는 이 같은 문제를 로맨틱코미디·액션·멜로 등 대중이 열광하는 영화와 드라마 장르를 망라해 폭넓게 다뤘다.

물음에 대한 해답은 저자와 독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주제일 듯하다. 책은 말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하라”고. 고민해보는 시도가 중요한 건 인권에 대해 무지한 사회가 이르는 종착역이 어디인지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적 소수자를 홀대하는 사회는 결정적인 순간, 인종 학살과 같은 비극을 낳는다고 말한다.

잘 와 닿지 않는다고? 독일의 유대인 학살만이 인종 청소인 건 아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십만, 수백만 명을 해칠 수 있는 대량학살무기의 시대에 우리를 지켜주는 건 인권에 대한 민감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다. 이제는 코미디처럼 받아들여지는 장발이나 치마 길이 단속은, 아직도 교육 현장에선 매일 일어나는 문제다.

법대 교수가 쓴 인권서가 지루할까봐 걱정인 독자라면 마음 놓아도 될 듯. ‘영화보다 재미있는’ 이라는 책의 수식어는 허풍이 아니다. 저자는 전작 ‘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과 스폰서 문화를 자근자근 꼬집은 솜씨를 이번에도 보여준다. 대중적인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인용한데다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유머를 섞어 가며 과격하지 않게 말해, 사회운동가들의 서적이 흔히 가질 수 있는 딱딱함도 없앴다. 다만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편집, 구조 등 기존의 틀을 적용해 일목요연하게 영화를 설명한 비평서를 기대한 독자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