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내가 만난 하나님(7) '잘난 척, 아는 척, 믿는 척'

입력 2010-07-15 14:23


세상 사람을 다 속여도 속일 수 없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사는 것이 사람인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까닭에, 이른바 ‘합리화’를 시킬 줄 아는 교활한 존재가 사람이니까요. 이재철 목사의 <나의 고백>으로 혼비백산한 저는 드디어 저 자신을 속이던 '교활한 합리화'라는 너울을 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흉악한 제 몰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증오와 분노와 원망,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 마음속에서 저는 언제나 천사였고, 그들은-저를 나락에 빠트린 자들-언제나 악마였습니다. 그랬는데, 금단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먹고야 만 하와와 아담의 잘못을 반복했던 제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증오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복수하고야 말 상대는 바로 저 자신인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조병화 선생의 한 줄짜리 시처럼 “결국 나의 천적은 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저 자신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에서 기어다니는 벌레, 아니 이미 벌레처럼 변해버린 저 자신을 소독하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괴로워하는 저를 지켜보며 함께 앓던 아내가 성경 필사를 권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나뭇가지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성경을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 민수기로 이어질 때 벌써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신약성경만 할 걸 그랬나 봐요”라며 아내가 안타까워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필사하는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똑같은 소릴 했습니다. 사실 구약성경 필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그 말이 저를 엄청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내의 말은 “신약성경이라도 다 할 수 있을까요?”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소리? 나는 반드시 해낸다”고 결의를 다진 것이지요. 마침내 성경필사를 완료했을 때 저는 제 자신이 엄청스레 대견했습니다. 시작하고 약 1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마도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줄로 짐작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필사하고 난 뒤에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관해서요. 진정으로 궁금하신 분들께는 한번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가장 확실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로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어김없이 만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임을 아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는 '네버 엔딩 스토리'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저절로 '할렐루야'를 외치게 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삶은 더욱 고통스럽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모르는 척 하고 살던 때의 습관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적당히 살면 그만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적당히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별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드리는 이유를 극명하게 알게 됩니다. 시시각각으로 시험에 들기 때문이지요. 예전 버릇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적당히 하고나면 괜스레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게 되고, 그런 날에는 제 스스로 부끄럽고 괴로워서 기도 시간도 길어지기 마련입니다.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무소부재하신 그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납니다. 아니, 항상 저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슬쩍 피하고 싶어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합니다. 사람은 열두번 바뀌는 존재라고 한 분도 계시지만요, 정말 변하는데, 무섭게 변하더라고요. 제 경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너무 경건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은 불가능한 일인 줄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다만, 독서의 폭이 너무도 좁아졌습니다. 기독교 관련 서적 이외에는 다른 쪽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저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도 늦게 만난 지각생이니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무지한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우들과 만나 대화하기도 겁났습니다. 기도하는 모습부터 저와는 달랐습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한두달 빠짐없이 나갔던 나사렛교회, 다시 30대 중반이 되어 찾아갔던 벧엘교회, 30대 후반에는 사랑의교회, 그리고 또 공백기를 거쳐서 순복음교회, 새사람교회, 신반포교회를 거쳐서 2005년 백주년교회에서 정착을 했으니 뭘 좀 알아야 하는데, 교회생활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전무한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주일예배에만 출석하였습니다. 등록절차도 밟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매우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잘난 척, 아는 척 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뒤에야 겨우 만난 하나님이고, 새가 둥지틀 찾듯 찾아든 교회입니다. 행여 잘난 척, 아는 척 하던 자가 이젠 드디어 믿는 척 하는구나 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런 소리 듣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소리 듣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소리 들어서 당연할 정도의 제 주제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로 해서 귀하신 하나님과 신앙심 견고하신 믿음의 선배들에게 누가 되면 큰 일 아닙니까.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연재하고 있는 이 순간도 매우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은 저같이 무지한 죄인도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아직도 만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혹시 수술을 받아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아픈 순간이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서 병이 낫는 거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병을 가지고 사시겠습니까? 잠깐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치유하는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다음 얘기를 기다려 주십시오(계속).

2010년 7월 14일 김종찬(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희망의 소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