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 사회적 합의] 뇌사·식물환자 ‘말기’ 대상… 구두동의도 효력

입력 2010-07-14 21:41


보건복지부와 사회 각계 인사들로 꾸려진 사회적 협의체는 환자 본인 동의가 있을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말기 환자의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연명치료 중단 어떻게=이번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환자 본인의 동의 여부다.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 연명치료 중단 대상이 된다. 구두로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녹취 등의 방법으로 입증이 가능하면 정당한 의사표시로 인정된다. 말기환자가 의향서를 작성할 경우 신중한 판단을 돕기 위해 의사와 상담한 뒤 2주 동안 숙려기간을 두기로 했다. 의향서를 작성한 뒤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의향서를 철회할 수 있다. 의향서를 작성할 때 공증절차를 의무화하는 것은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말기환자가 아닌 사람도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고 의료기관 외의 기관에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미성년자 또는 지적장애인이 명시적 의사표시 없이 말기 상태에 빠졌을 경우엔 병원윤리위원회의 확인을 거쳐 대리인의 의사표시를 인정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환자가 임종이 임박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의료진이 가족과 상의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게 된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는 대상에서 제외시켰지만 임종이 임박한 말기상태라면 치료 중단 대상이 된다. 뇌사자도 말기환자에 준해서 치료중단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단순히 환자의 사망시점을 늦추는 시술(특수 연명치료)이 중단된다. 수분·영양 공급 등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일반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없다.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둘러싸고 가족이나 의료진의 이견이 생기면 향후 설치될 ‘병원윤리위원회’에서 조정을 맡게 된다.

◇연명치료 실태=지난해 7월 복지부가 의료기관 256곳을 상대로 연명치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입원환자의 1.64%가 연명치료 대상 환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말기암 환자(42.4%)가 가장 많았고,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18.4%), 뇌질환 환자(12.3%), 말기 호흡부전 환자(10.1%)가 뒤를 이었다. 의료계에선 만성질환으로 임종하는 사례가 연간 18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매일 600여명에 이르는 수치다.

이 가운데 임종직전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는 17%인 3만여명으로 파악된다. 나머지 15만명은 현행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데도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환자가 의식을 잃으면 가족과 의료진이 비공식 대화를 통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다. 인공호흡기를 떼고 환자를 집으로 옮기는 조치가 대부분이며, 의료계의 관행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의료계는 물밑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연명치료 중단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협의에선 입법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현재의 사회적 합의 수준을 전제로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의견은 6명에 그쳤고, 9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입법화 여부는 국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